편집국장 공인배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말초적 정치, '배신'이라는 부도덕성, 그릇된 정치공학에 매몰되어 있는 저급한 국정운영의 현주소

청와대의 우병우 민정수석 지키기가 처절하다. 사면초가에 처해서도 항전 의지는 결연하고, 비세를 뒤집기 위해 일격을 날릴 승부처 노림도 포기하지 않는다. 우병우가 지닌 가치가 무엇인지는 박근혜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

정권말 급격한 권력누수를 막기 위한 배수진인지, 박 대통령 특유의 의리인지, 우병우가 박 대통령의 치명적인 약점을 쥐고있는 것인지, 우병우를 내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흉중은 이나라 국민들이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신비한 공간이다.

우병우는 '사퇴 압박'이 갈수록 고조되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다. 그를 핀치에 몰아세운 여론의 촉매는 조선일보였다. 우병우의 처가땅 매매과정 의혹을 조선일보가 최초 보도한 것이다.

이후, 우병우의 아들 병역보직 특혜 의혹(직권남용)과 우병우 가족회사 (주)정강의 생활비 떠넘기기 의혹 등이 터져나왔는데, 청와대는 그러한 언론보도들을 '부패한 기득권세력의 대통령 흔들기'로 규정했다. 보도의 순수성을 의심케하는 암시로 국민들의 상상력을 가일층 자극하면서 우병우의 버티기 명분을 조장해 온 것이다.

그런 와중에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이 우병우 관련 언론보도 국면을 경색시키는 의혹을 두 차례에 걸쳐 제기했다. 송희영 조선일보 편집인 겸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호화 접대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자료를 공표한 것이다.

이 자료는 접대를 받은 동선을 너무나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어서, 자료를 작성한 주체와 제공한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쏠렸다. 전문기관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이 송희영 추적 자료는 특정 주체가 비상수단을 돌파하기 위해 사전에 준비해 놓은 '비장의 무기'라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최근 이같은 언론의 부도덕성에 불순한 의도를 더해 범죄의 구성요건을 완성시키는 폭로에 직접 나섰다. 송희영이 청와대 핵심인사를 만나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전 사장의 연임을 로비했다는 것이다.

청와대 스스로 "관여할 수 없는 입장"이라며 거절했다고 하니, 송희영에게 제기되는 변호사법 위반이나 알선수재죄가 성립하는지에 관한 법리는 사법당국이 살필 것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혹은 우병우 문제를 보도해 온 언론의 활동에는 급제동이 걸렸다.

청와대 의도가 정확하게 먹힌 것이다. 청와대는 폭로와 동시에 "조선일보가 우 수석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보도한 배경이 의아했는데, 송 전 주필과 대우조선해양의 유착관계가 드러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다"고 부연하면서 폭로의 목적을 분명히 했다.

실로 역작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정치공작이 아닐 수 없다. 송희영의 로비 대상이 청와대였다면, 송희영은 청와대를 상대로 로비 할 만한 지위와 창구를 유지해왔다는 걸 방증한다. 따라서 청와대의 이번 폭로는 쌍방의 신뢰 프로세스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그런 언론의 로비 사례들이 더 있다고 흘렸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말초적 정치, '배신'이라는 부도덕성, 그릇된 정치공학에 매몰되어 있는 저급한 국정운영의 현주소, 언론탄압 의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우병우를 지키려하는 박 대통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이제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국민들은 우병우 관련 의혹이 어떻게 가려지는지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릴 것이다. 그러나 우병우에 대한 핵심의혹들은 불기소 될 공산이 높다.

특별수사팀이 그런 우려를 낳고 있다. 우병우의 가족회사 (주)정강에 대한 압수수색에서는 쇼핑백 하나 분량의 자료를 들고 나오는데 그쳤고, 우병우의 처가가 차명으로 소유하고 있는 경기도 화성 땅이 압수수색 대상에서 빠졌다.

처가에서 강남역 부동산을 넥슨에 팔 때 우병우가 넥슨 관계자들과 통화했는지, 우병우의 장남이 운전병으로 선발되는데 우병우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확인하기 위한 우병우의 휴대전화 압수는 단행하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통신사로부터 넘겨받은 우병우의 통화내역 자료를 살펴보는 시늉을 하고 있다. 통화내역은 최대 1년치만 통신사가 보관하게 되어 있어서, 5년이 넘은 부동산 매매 시점과 1년 4개월이 넘은 운전병 선발 시점의 통화내역은 전혀 확인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우병우의 자택과 사무실 역시 압수수색 대상에서 빠졌다. 이로 인해 검찰은 우병우의 상속세 포탈이나 횡령 혐의를 입증 할 의사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우병우는 허위재산신고에 따른 공직자윤리법 위반과 공직자윤리위원회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도 적용받지 않을 것이다.

사안의 심각성은 검찰의 부실수사가 우병우에게 면죄부를 준다는데 있다. 검찰은 우병우가 방어할 수 있는 의혹에 대해서만 수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한사코 청와대가 잇따라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우병우는 7월 20일 넥슨의 역삼동 땅 특혜 매입 의혹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진경준 검사장이 거래를 주선한 사실이 없다. 검찰에서 조사한다면 모른다고 할 수 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또 청와대는 8월 18일 이석수 감찰관이 우병우를 검찰에 수사 의뢰하자, 하루 뒤 거꾸로 이 감찰관의 감찰정보 누설의혹을 국기문란으로 규정하며 수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우병우 관련 의혹이 아닌 이 감찰관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한편의 조악한 영화, 정치 첩보물은 박근혜 정부가 제작한 시리즈의 속편이다.

배신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집권 초기, 대선 결과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팽배해졌을 때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수사 책임자였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을 혼외 아들 의혹으로 찍어냈고, 수사팀은 위축됐으며 소속 검사들은 줄줄이 좌천당했다. 박 대통령은 정권에 걸림돌이 되는 몇몇 검사를 쳐내는 본보기로 집권 1년차에 부닥친 퇴진론을 정면돌파 했으며, 동시에 검찰조직 전체를 길들이는 효과를 봤다. 이 극적이며 일련의 괴기스러운 스릴러가 그 본편이다.

검찰은 4일 전 대우조선해양 옛 경영진과의 유착의혹을 받고 있는 송희영을 출국금지시키고, 송희영의 금융계좌 추적과 통신내역 조회에 나섰다.

검찰은 또 우병우 처가 땅 의혹을 처음 보도했던 조선일보 이명진 기자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이른바, 국가 정보를 이명진 기자에게 누설한 이석수 전 청와대 감찰관의 '국기문란' 행위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이제 우병우의 비리의혹은 국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질 것이다. 검찰이 송희영을 문초하고 기소하는 과정에서 검찰발 프로파간다가 잇따라 생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다음과 같이 청와대가 제시한 지표를 충실하게 따라갈 것이다.

"검찰 수사로 송 전 조선일보 주필과 대우조선해양의 유착관계가 드러나게 될 것을 우려한 조선일보가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우병우 수석을 '공격'해 이를 덮으려 했다."

이 같은 본말전도 전략은, 18대 국정운영 전반기를 보좌했던 김기춘 비서실장 시절부터 항용됐던 위기 타계 지침일 것이다.

누구에게도 정상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청와대의 치기 어린 폭거는 언제든지 아무렇게나 다시 휘두를 수 있다는 경고메시지가 되어 국민들 특히 언론인들의 뇌리에 박혔다. 송희영을 둘러싼 비리의혹은 반드시 밝혀지고 엄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련의 폭로와 검찰수사가 우병우를 구하기 위한 무리수일 경우 이번에는 국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 집권 전반기의 논픽션 영화를 통해 충분한 학습의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