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잠자는 시민의식이 건강한 긴장상태로 깨어나기를 희망하게 되는 오늘이다.

최근 익산시민들이 겪고 있는 독극물 매립파동은 의외의 변수가 아니다. 수많은 채석장들은 대개 축구장 세개 보다 넓은데다 백길 낭떠러지의 거대한 바위 웅덩이를 만들었다. 채석업자들은 전국 최고의 돌을 다 파먹고 나서 복구비용이 너무 어마어마해 감당할 수 없다며 죽는 시늉을 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낮은 비용으로 웅덩이를 메우려고 하는 업자들과 훼손된 산림 복원을 감독하는 익산시는 자본주의 탁상 앞에 마주 앉았다. 그 탁상 위에 시민들의 건강권은 없었다. 양태를 보면, 오로지 어떻게하면 업자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을까에 논의가 집중됐다.

산지관리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가용한 방법들을 찾았다. 익산시가 허가해 준 폐기물 최종 처리, 폐기물 처리 신고, 폐기물 종합 재활용 등속의 업태들은 그 산물이다. 일반폐기물을 비롯한 토사, 석분, 유기성 오니, 석탄재, 소각재 등 업태에 따른 대상 품목이 다를 뿐 '폐기물 매립'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같다.

정부는 산지관리법에 폐석산 복구시 토석으로 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해 2010년 12월 1일부로 시행했다. 폐기물이 포함되어서는 안 되고, 폐기물관리법 및 토양환경보전법 등에서 정하는 유해성 기준과 오염기준에 적합한 양질 토석이어야 한다.

폐석산 복구 기준을 명시적으로 강화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로부터 12년 뒤인 2012년 2월 22일 같은 법 조항을 완화했다. 좁게는 석분을 포함한 토석으로 복구할 수 있도록 단서 조항을 단 것이다.

석분매립의 적법성을 확보해 준 이 단서 조항은 당시 조배숙 의원이 소속되어있던 농림수산식품위원회가 법안을 발의했다. 석재산업의 부흥과 침체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폐석산은 균열 투성이

대부분의 시민들은 폐석산 상태를 잘못 알고 있다. 돌을 캐낸 거대한 돌웅덩이이기 때문에 이 곳의 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않는 수영장일 거라는 막연한 짐작에 기대는 것이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폐석산은 균열 투성이다.

돌을 캐낼 때 폭약을 쓰기 때문이다. 물이 지하로 스며드는 속도가 더딜 뿐이다. 아직 지하수로 빠지지 않고 고여있는 물은 유입되는 빗물에 의해 계속 차오른다.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다. 폐석산 복구지의 물은 아래로는 지하수로 위로는 하천수로 동시에 유입되는 것이다.

유해성 폐기물이 묻혀서는 결단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익산시는 폐기물업자들에게 길을 열어줬다. 맹독성 발암물질이 폐석산에 가득 채워진 것은 예고된 수순이다. 폐석산에는 지금도 유기성 오니가 매립되고 있다.

법이 유기물 매립을 금하고 있는 것은 썩기 때문이다. 썩으면 악취의 원인이 되고 가스가 발생한다. 매립장 하부에서 가스가 계속 발생해 임계점이 넘는 압력이 발생하면 폭발을 일으키게 된다. 유기성 오니를 매립하다 실패한 수도권 매립지가 그 단적인 예다.

유기성 오니 매립장 폭발은 시간 문제다. 폐석산에 독극물이 매립된 것을 사법기관에 의해 알게 된 이후 공황상태에 빠져든 것처럼, 폭발이 시작된 뒤에는 사후약방문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공산이 높다.

조짐에 대한 의외로 두터운 불감증

당초에 폐석산에는 폐기물을 매립하도록 해선 안 됐다. 한 지역 언론은 민선 4기 초입에서부터 그런 익산시 청소행정의 위험성을 줄기차게 역설해 왔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지역언론으로서의 자괴감과 허탈감 뿐이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고, 그 언론은 고립무원에 떨어질 따름이었다.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경고가 공론화되기는 커녕 불안감을 조장하고 익산시정을 흔드는 것으로 치부될 뿐이었다. 위험이 가시권에 있지 않을 때, 조짐에 대한 불감증은 의외로 두터웠다.

사실, 기차 바퀴를 망치로 두드려 보는 일은 매일 해야 하고 아주 미세하게 다른 소리에서 결함을 발견하는 것인데도, 유능한 정비사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 들어도 상태를 알 수 있는데도, 전장에서 작전에 실패한 자는 용서를 구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자는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걸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3년씩이나 학습하는데도.

왜 환경 인재(人災)의 징후들에 대해 그토록 둔감한 것일까. 아마도 그 피해가 당장 눈앞에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앞서 안녕을 희구하는 사람들은 무사안일주의에 빠지기 쉽다는 역설을 절감한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장차 벌어질 일을 걱정하며 불안에 떨고 싶지 않은 탓이다. 그런 마음이 강하면 강할수록 굴절된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을 오늘의 평온을 깨는 트러블메이커로 보는 식의 눈 말이다.

그런 상태의 대중이라면 위험을 경보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자명하다. 그 사이에 그런 경보로 인해 불신을 받는 조직이 있다면 그 조직이 그 경보의 목소리를 무력화 시키는 일이란 식은 죽 먹기가 된다.

다른 이들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한 지역언론은 그것을 절실하게 체감해 왔다. 그런 수면 아래의 와류에 의해 심지어는 위험을 알리는 경보가 다른 목적으로 왜곡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한다.

편안할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나 익산시 청소환경 행정은 생각하지 않아 대비하지 못했고, 나아가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근심할 일들을 더 많이 양산해 왔다. 잠자는 시민의식이 건강한 긴장상태로 깨어나기를 희망하게 되는 오늘이다.

동물이 살아있다는 건 필요한 만큼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니까. 그 긴장이 최소한의 생존 동력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