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돌이켜 보면, 조직 혹은 검사동일체 보호라는 불문율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멈춰 설 지점을 찾았다.

조직 내부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 수준은 조직 전체가 개혁을 요구받는 정도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것.”

주변이나 윗선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일하는 사람은 좀 다른 피가 흐르는 별종일까. "무슨 소리냐. 소신 없는 사람들 색깔을 구별한다면 모를까, 대다수의 소신 있는 사람들 색깔을 궁금해 하다니, 헛생각 할 정도로 시간이 많구나."

근자에 한 현역 중견 검사에게 가볍게 던진 질문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가 정색하며 날선 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덕담이나 더 주고받았으면 좋았을 텐데, 검사동일체를 운운하며 비위를 긁었던 내 불찰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둘 사이의 분위기가 경색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마음을 담아 최대한 경쾌하고 부드럽게 물었다. "그러면 왜 임은정 검사 같은 인물이 잘 눈에 띄지 않을까."

그는 직답 대신, 조직 내부에서 튀면 소신이 있는 거냐고 반문했다.

나는 조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업무 수행이 부당한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완결 될 때의 경우를 짚으며, 소신의 가치를 열변했다. 그러자 그는 "과거사 재심사건에 대한 무죄 구형을 두고 소신 검사라고 한다면, 그것은 사안에 대한 이해가 잘못된 것이다"고 반박했다.

검사가 기소를 결정했다는 건 죄를 인정했기 때문인데, 구형을 '무죄'로 하는 것은 이율배반적 행태라고 규정했다. 죄가 없다고 판단했으면 당초에 불기소처분하면 그만인데, 기소를 한 자체가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그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어느 조직이든 나서기 좋아하고, 사람들의 집중되는 시선을 즐기며, 돌출 행위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거야 말로 사사로운 목적을 추구하면서 조직의 힘을 악용하는 행위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거기에 한마디 더 얹어놓고야 만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목적이 조직 바깥쪽일 경우가 많아. 주변을 둘러봐. 명성을 떨치던 소위 스타 검사나 경찰들을.. 최종 목적지가 어딘지말야. 나는 그런 사람들을 검사나 경찰로 안 봐. 그냥 연예인들이지. 이슈를 등에 업고 한바탕 쇼를 보여주는 거지. 극적으로"

내 뇌리에는 임은정 검사와 권은희 국회의원이 겹쳤다. 잠시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하필 왜 이 순간에 여성들의 이름만 떠오른 걸까"하는 지엽적인 질문들이 어처구니없게도 꼬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이런 교란은 저 친구가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반페미니즘이 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일까.

그 와중에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수사하다 돌연 다른 곳으로 전보 된 상태였던 당시 권은희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소신발언(폭로)이 방금 전의 일처럼 떠올랐다.

대선 투표 55시간을 앞두고 수서경찰서장이 이례적인 심야브리핑을 통해 국정원 여직원이 제출한 컴퓨터에서 여론조작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발표했는데, 권 과장이 즉각 경찰수뇌부의 수사 방해와 은폐 행위를 조목조목 폭로하고 나섰던 것이다.

이후 권 과장과 당시 경찰청장 및 서울경찰청장간 진실공방전 이어졌는데, 권 과장은 자신의 행위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처지에서 모든 것을 던지는 결행이었다. 그런데 그 시작이 다른 목적에 의해서였을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모든 정황은 권 과장이 원칙에서 자기 정체성을 찾는 경찰관이고 경찰 수뇌부가 그를 수사에서 배제한 채 자기를 부정하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자 격분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국민들이 그의 신변을 걱정하고, 그가 공직에 잘 어울리는 인재라고 여기게 된 것은 그의 출구 없는 악전고투를 지켜본 뒤였다. 그런 권은희의 궤적에서 오락가락하던 중에 문득 떠오르는 남성이 있었다. 윤석열 검사다. 국정원 댓글 특별수사팀장을 맡아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던 바로 그 남자.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법무부장관과 서울중앙지검장 등의 집요한 수사 방해와 외압을 증언했고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대신 정권의 역린을 건드린 대가를 지불해야했다. 검찰 특수부 요직을 두루 거치며 승승장구하던 그의 검찰 내 지위는 연속 지방검사로 좌천되면서 급전직하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한동안 타깃을 찾지 못한 채 길을 잃었다. 차 한 잔을 다 마실 때 쯤에서야 겨우 임은정 검사의 주제로 되돌아갔다. "죄가 있다고 판단 돼서 기소를 했지만 재판과정에서 확실한 무죄 증거들이 제시되면 검사가 무죄를 구형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반문을 다소 새된 목소리로 던졌다.

"사건을 다른 검사에게 배당했는데, 굳이 그걸 어기면서까지? 처음부터 의도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냐. 사건을 맡지 않았으면 말썽도 없었잖아." 나는 그에게 윗선의 불순한 의도가 임 검사를 몰아붙인 것 아니냐고 대꾸하려 했다. 그 순간 나는 그가 주도하는 대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제와 무관한 성별문제에 사로잡혔던 이유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대화에 등장한 여성들이 투사들이었다는 점이다. 저항하는 정도에 그쳤을 뿐 뒤가 물러서 계속 밀리거나 찍어내기 당하는 남성들과는 달리, 자기가 맞닥뜨린 일을 끝까지 놓지 않고 끝장을 본 여성들의 근성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물론 이를 성별의 차이로 보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대두 된 여성들이 다음 보다는 현재를 중시했다는 것이다. 오늘 포기하지 않고 결말을 지어야 자신이 조직을 떠나더라도 후배들에게 내일이 온다는 것을 지표로 삼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늘 부끄럽지 않기에 당당하게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갑자기 침묵하자 내 앞의 남성 검사는 "그런 연예인들이 공연히 소신발언이네 뭐네 하면서 조직 전체를 욕보인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침묵할 수 있었다. 부당한 일에 물러서지 않는 이를 향해 빈축을 날리며 힐난하는 자는 그 반대편에 선 자이기에.

공교롭게도 그런 씁쓸한 만남 뒤 며칠이 지나지 않았는데 한 전도유망했던 젊은 검사의 자살 소식이 들렸다. 그가 유서에 남긴 업무에 대한 중압감 보다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간 졸렬한 상사의 얘기가 입길에 올랐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나 그가 SNS상에 남긴 직속상관에 대한 모멸감은 또다시 국민들의 열대야가 됐다. 망자는 매일 욕지거리를 일삼는 부장검사 때문에 자살 충동을 느꼈다. 조용히 술 먹을 방을 구해오라고 다그치고, 안 될 것 같다고 하는 부하 검사에게 욕을 해댔다.

유족들이 대검찰청과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일상적으로 언어폭력을 휘둘러 부하를 죽음으로 내몬 부장검사에게 책임을 물어달라고 했다. 그러나 검찰은 스스로 환부를 도려낼 수 있을까.

진실을 규명해 해당 부장검사를 축출하는 것은 오히려 엄중한 검사동일체의 질서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남성들, 아니, 조직사회의 질서를 숭배하는 그들은 스스로를 사회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니까.

조직 내부의 치부를 까발리는 것은 조직에 누가 되는 것이고, 자긍심을 뒤흔드는 것이니까. 망자조차 그런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면 숨이 터억 막힌다. 그는 정작 "일이 너무 많다. 쉬고 싶다"는 뜻 이상의 말을 유서에 남기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조직 혹은 검사동일체 보호라는 불문율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멈춰 설 지점을 찾았다. 조직 내부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 수준은 조직 전체가 개혁을 요구받는 정도에 이르러서는 안 된다 것. 그것은 사회적인 동물로서 조직의 한 일원으로서 최소한 견지해야 할 미덕이라는 것.

하지만 자존감에 상처받기를 기피했던 그들이야 말로, 사실은 더 큰 내상을 감당해야 한다. 선택은 신념의 문제다. 검사는 검찰 조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명백한 사실이다. 내부에서 할 수 없는 일은 외부의 조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존감의 방향성

검찰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권의 시녀 혹은 조직의 존엄성을 내세운 초법적 권위의식에 투쟁하는 이를 향해, "반사회적이다. 반조직적이다"는 낙인을 찍는 자야 말로 야만인이라는 점을 왜 모를까.

임은정 검사는 며칠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의 눈부신 내일이었을 참 좋은 후배의 허무한 죽음에 합당한 문책을 기대한다"며, 문제 간부들의 행동에 힘겨워하는 후배들에게 들이박으라고 권했다. 그러면서 "너도 다칠 각오를 하라"고 전제한 뒤, 자신이 상사에게 당한 치욕적인 기억을 술회하기도 했다.

후배의 자살 소식 직후 연판장 돌려야 하는 것 아니냐, 평검사 회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떠돌다 사그라들자 나선 질타였다. 스스로 안전하지 않은 검찰이 어떻게 국민들의 안전을 지킨다는 말이냐는 반어로 다가온다.

부끄러움을 아느냐의 여부가 사람을 구분하는 척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조직이기주의에 빠진 검사들이 일견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라도 부끄럽지 않은 조직으로 환골탈태하는 일에 용기 있게 나서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자존감의 방향성이 아닐까.

검찰 뿐만 아니라 모든 공조직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검찰조직의 현주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