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말은 양날의 칼이다. 조심하지 않으면 누구든지 화를 면키 어렵다. 상대도 베지만 자기도 벨 수 있으니, 잘 알고 써야 한다. 잘 다루지 못하면서 함부로 쓰면 말은 그저 흉기에 불과하게 된다.

의사에게 칼은 환부를 도려내는 도구이지만, 천둥벌거숭이에게 칼은 무엇이든 베는 짜릿한 마성의 도구일 뿐이다. 그 위험을 모르는 채 파괴의 맛에 도취되면 보다 더 깊은 울림의 자극을 쫓게 된다. 그렇게 중독되면 필경 마성의 광기에 사로잡히고 만다.

우리는 그렇게 지극히 위험한 자의 손에 들린 칼과 그 칼의 소설 같은 활극을 현실에서 자주 목도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누리소통망(SNS)은 그들의 주된 서식지 일 것이다. 사회적 관계를 생성하고 강화시켜주는 효용가치 때문에 각광 받는 온라인 플랫폼이지만, 그런 순기능 못지않게 역기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사용자의 인맥확대 목적을 제외하면, 사용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정보공유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보장되는 익명성이 낳은 폐단일 것이다. 익명성이라는 호랑이 등 위에 올라탄 가학 중독자들은 누리소통망에 환멸과 단절 기류를 간단없이 확장시키며 파국을 향해 질주한다.

누리소통망 때문에 자살하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고립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있다. 칼이 만든 상처는 아물어도 말이 남긴 상처는 아물지 않는다. 악성 댓글이 피해자의 정신을 죽이는 까닭이다. 더구나 댓글 가해자들은 꼬리를 무는 댓글로 집요하고도 철저하게 한 사람을 파괴하곤 한다.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의 실명과 사진을 게시하고 사건 정황을 제멋대로 각색한 지속적인 음해의 댓글에 피해자가 얼마나 지리멸렬했는지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자식을 사고로 잃고 실의에 빠져있는 부모의 과거 행적을 물어뜯고 찢어발기기를 승냥이떼처럼 하던 가해자들도 기억에서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연예인도 자신의 가정사를 놓고 온갖 비방과 욕설을 끊임없이 해대는 악플러들 때문에 공황장애를 겪다가 결국 목숨을 끊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은둔의 시대, 서로를 위로할 스킨십의 소통망이 오히려 불안과 거부감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기회지수가 세계 1위인 나라이고, 천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누리소통망을 이용하고 있는 이 나라에선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악플 사건으로 형사 입건 된 사람들을 보면 가해자들의 연령대가 고른 분포를 보이고 직업들도 다양했다. 심지어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다수 있었다. 남의 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사회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습관적으로 부정적인 말을 하고 무의식적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특정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섬뜩한 일이다. 그들은 대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하고 싶은 말만 한다.

논객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글에 달아 놓은 악플들을 보더라도 비방을 위한 비방들이 대종을 이룬다. 또는 특정한 부분에서 자기 눈에 띈, 그러나 글의 중심내용과는 거리가 먼 단어나 수식어를 공격 대상으로 삼고있다.

특히, 자의적인 해석으로 글의 본질을 흐릴 뿐 아니라, 그 자의적인 해석은 맹목적인 공격을 합리화한다. 그 해석도 뜯어보면 사실 구실에 불과할 뿐이다. 글의 내용과는 무관한 모욕과 폄훼가 악플 동기의 전부였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단적으로 악플들은 글의 내용을 파악한 뒤에 길어 올린 산물이 아니다. 글의 주장이나 논리의 오류를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대게는 글을 쓴 논객을 비방하거나 글의 주제를 비트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들이 댓글 한 줄 쓰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악플러들은 글을 읽지 않고, 읽더라도 비방목적에 부합되는 부분을 적출하기 위한 것일 뿐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본질적으로 쌍방향 소통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침입하여 교란하고 있는 것이다. 악플이 열에 아홉은 허술하고 조악한 문장구조를 띠고 있는 이유다.

오직, 누리소통망 이용자들의 마음을 겨누는 칼은 천박한 자의 손에 들려있으며, 그 칼은 거칠고 녹슬어서 더 무섭다. 자유로운 토론의 장을 비난의 장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그들은 불통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정보가 공유되고 유통될 때 유의미한 누리관계망은 악플러들을 기피하는 이용자들의 자기공간 비공개 사례가 늘어나면서 점차 누리불통망 영토에 잠식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소통이 절실한 시대, 그러나 소통의 리스크를 감수하지 않으면 불통을 선택해야 하는 자기모순의 지형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날 만큼 정직하게 흔들리자

열이틀 뒤에 탄신일을 맞이하는 석가모니는 "말은 파괴와 치유의 두 가지 힘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말이 진실하고 인정이 있다면 세상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 시인 제페토는 우리 곁에서 그 설파를 치열하게 재해석한다.

안타까운 사건기사 아래 달리는 그의 댓글에선 한자 한자 깊은 고뇌의 흔적이 묻어나고, 조밀하게 직조된 그의 문장 행간에선 사건의 심연에서 얼마나 고민했는지가 배어난다. 그것은 첫사랑이 지녔던 향기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고 싶게 하며, 전부를 던지고 싶게 하며, 흉중에 스며든다.

악플러들을 퇴치시키기 위해선 유년기부터 올바른 사이버 윤리의식을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며, 사이트 관리자들의 철저한 악성 댓글 관리도 필요할 것이다. 그보다 먼저 제2, 제3의 제페토들이 자라날 풍토가 절실하다. 그리하여 자기나 혹은 누군가의 영혼을 베지 않고 양날의 칼을 잘 쓰는 검객들의 시대를 열어나가야 한다.

누군가 잘 되면 축하해주고 불행한 일을 겪으면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그런 사회의 작동원리를 진부하고 위선적이라며 부정하는 돌연변이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못하도록 사이버 환경을 조성하는 일에 누리소통망 이용자들이 대동단결해야 하지 않을까.

건강한 사이버 문화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존재의 확인에서 비롯할 것이다. 다음의 제페토가 남긴 댓글 '억새와 연인'은 그 방향성이라 할 만 하다.

모여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주목받는다/ 한 데 모여 흔들리자/ 모여서 굳이 풍향과 풍속을 설명하지 않아도/ 보는 것만으로 오한이 날 만큼 정직하게 흔들리자/ 아무것도 하지 말자/ 부러질 듯 허리가 휘어도/ 나는 너의 뒤에서/ 너는 나의 뒤에서 밀리지 않는 배경이다/ 태양은 서둘러 뒤편에 내려앉아라/ 네가 은빛 머리칼을 금빛으로 물들일 때/ 바람이 굵은 결로 불어온다 했다/ 준비를 마친 청년이/ 긴 머리 애인을 향해 셋을 세고 나면/ 우리의 씨앗을 떠나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