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문재인과 박근혜의 대선 경쟁은 뚜렷한 진영간 대리전이다. 문재인은 노무현 정권을 대표하며, 박근혜는 이명박과 박정희 정권을 아우른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상대가 공격하기 위해 설정한 틀인데, 서로 부정하지도 않고 있으니 두 후보의 국정 철학 원천은 과거 정부에서 찾으면 될 것이다.

또, 스스로를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고 집단을 이루지만, 사실은 그들이 내놓는 공약이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지 않으며, 다만 시대정신을 투영하고 있으니 사실상 이념 구분은 모호하다.

무엇보다 다양한 가치관과 다층적 세력들이 끊임없이 융합을 이끄는 시대에 진보와 보수 논쟁은 낡은 사고일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두 후보의 진정성과 도덕성, 균형,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그들의 정권이 헌법을 준용했는가, 그것을 통해 정통성을 확보했는가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두 후보가 대동소이하게 필요성을 역설한 검찰개혁의 지표가 신뢰 할 만한 것인지는 그들의 정부에서 행정권력으로부터 검찰권력의 독립이 이루어진 정도로 판단 할 수 있다. 또한 두 후보가 표방하는 정부가 권력분립을 위해 무엇을 감수했는지도 그들 공약의 실천 여부를 예측 할 중요한 단서다.

참여정부는, 검찰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출신과 기수를 파괴하는 인사를 단행하며 강력한 실천의지를 보였다.

강금실 법무장관 임명은 그 신호탄이었다. 전국에서 평검사 회의가 잇따르는 등 검찰이 조직적으로 반발했다.

대통령 노무현은 젊은 검사들과 공개대화를 나누면 검찰 독립과 개혁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또한, 그의 대통령과 평검사들간의 격의 없는 대화 제의는, 정권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족쇄를 풀어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표명이었다.

그런데, 평검사들은 최고 권력자의 견해에 당당히 맞섰다. 대통령의 입에서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말을 이끌어낼 정도로 그 기개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것은 정의를 바로세우고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검찰의 독립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의 발로가 아니었다. 조직의 이기주의를 표출한 것에 불과했다.

나아가,대통령 노무현에게 공개적으로 존중받으며 만용을 부렸던 검찰은, 대통령의 검사와의 대화 직후 노 대통령에 대한 대선자금 수사에 착수했고, 측근들을 대거 사법처리했다. 행정권력으로부터 검찰을 독립시킨 노무현은 검찰 상층부에 대한 인사 개혁을 단행한 죄로 임기 초부터 핵심참모들의 추진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불렀다.

돌이켜 보면 검찰은 자신의 손에 조건없이 권력을 쥐어준 대통령에게는 즉각적으로 덤비고, 자신이 비위를 맞춰 획득한 권력의 칼로는 임기말과 임기를 마친 대통령들의 등 뒤를 찔렀다. 지난 25년은 그런 역사의 점철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성역화된 정치검찰은 어떻게 됐는가. 노무현이 바로세워준 정체성을 스스로 말살했다. '정권의 시녀'는 타력에 의해 채워진 족쇄가 아니라, 검찰이 스스로 선택한 거래라는 점을 명증하는 자화상이었다.역사가 증명하듯 과분한 영화는 타락을 낳았다.

스폰서를 거느린 검사, 사건마다 뇌물을 챙기는 검사, 피의자를 성추행하는 검사, 권력 앞에 맹종하며 그 댓가로 손에 쥔 권력을 통제 할 줄도 모르는 검사, 그것은 조폭의 양태다. 집단의 세를 과시하며 상납받고 거래하는 폭력배들이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검찰 내부 게시판에 검찰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과 자성론이 줄이어 오르고, 자체개혁 방안이 제시됐지만, 검찰에 대한 들끓는 국민적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언론플레이용에 불과했다.

알맹이도 없다. 비리검사는 법조계에서 영구제명하고 추방해야 한다든지, 무리한 기소를 일삼고 기소해야 할 것은 봐준 검사를 실정법으로 단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다든지, 실효성 있는 자성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없다.

12년 전 정치권력에 영합하는 검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하다 사실상 항명죄로 파면 됐던 심재륜 고검장의 퇴임사가 당시 검찰의 유의미한 담론이 되었다면, 오늘 같이 참담한 현실을 국민 앞에 노출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중립성을 잃은 검찰은 두목의 눈치나 보며 서민의 가슴에 못을 박는 폭력조직"이라는 고언을 남겼다. 그 심각성을 갈파한 말이지만, 10년 뒤에는 더 심화됐다. 그의 말을 더 들어보자.

권력의 사냥개는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

검찰은 인사특혜와 권력·신분상승을 위해 권력 주변에 줄을 섰고,권력의 입맛에 맞게 앞장서서 충실한 시녀 역할을 했다. 특히 정권 전환기에 일부 정치성 검사들이 비열한 행태를 보여 검찰이 민으로부터 외면당했다.

최근 ‘검란(檢亂)’의 원인은 거듭된 검찰인사 잘못과 검찰권에 대한 간섭에서 비롯된 만큼 인사권자인 정부 최고책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

돌이켜 검찰의 오늘을 견주어 보니, 도대체 자정능력이 전무한 조직이다.

기소를 독점하고 검사동일체 원칙으로 똘똘 뭉친 조직이다. 수뇌부에서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검찰이 어제와 오늘의 사태를 일부분의 문제라고 축소해서는 안 될 일이다.

검사에게 절대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현행 체제가 근원적으로 안고 있는 위험성이다. 검찰의 성역화는 현 정권과 미래 정권의 명줄을 쥐고 스스로의 힘을 꾸준히 키워 온 결과다.

노무현은 검찰의 속성을 알면서도 재임기간에 행정권력에 예속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자결과 직결됐다.

그는 무엇 때문에 표적 수사로 정치보복을 대행하는 정치검찰과, 거기에 온갖 인화물질을 밀어넣고 바람을 불어넣는 인민재판식 보수언론의 여론몰이를 감수했을까. 자신이 지켜야 할 진영이 명예를 결코 포기 할 수 없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명박 정권의 충직한 사냥개로 돌변한 검찰의 절대 부패는 노무현을 살해한 순간부터 예고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