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명박의 제왕적 독선은 임기 말에도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박근혜 당선자까지 예고된 특별사면에 대해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대통령의 권한을 넘어선 행위'로 평가했지만, 특사는 지난달 31일 기어코 단행돼 국민적 공분을 샀다.
원칙과 반칙의 대결에서 반칙이 이긴 날로 기록된다.

국민들이 겪는 허탈감의 후폭풍으로 법질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정의와 법의 수준이 앞으로 나아가기는 커녕 특권사면이 시작됐던 수십년 전으로 후퇴했다.

이대통령이 추호라도 국민여론을 고려했다면, 최소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은 이번 특사에서 제외했어야 옳았다.

최시중 전 위원장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다. 파이시티 사건으로 구속돼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은 이대통령의 오랜 친구다. 워크아웃 관련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었다.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으로 배임이나 뇌물수수 등 파렴치한 권력형비리를 저질러 형을 확정받고 복역중인 모리배들이었다.

최시중은 이번 특사로 복역해야 할 기간 중 47%, 천신일은 31%의 수감생활을 뒤로하고 교도소 문을 나섰다.

사법부의 권능을 무력화하는 조치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고질적인 병폐를 재확인하는 국민들은 절망에 빠졌다.

무엇보다, 자신의 죄를 스스로 사한 격이 되었다. 오만무도한 무소불위의 권능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고 생활터전을 파괴하며 소수재벌들에게 사익을 헌납해 온 지난 5년 정권의 족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정판이다.

지난해 개정된 사면법은 대통령의 전횡을 방지하기 위해 사면위원회를 설치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심사 기준인 '적정성'이라는 용어 자체가 모호한 개념이라는 지적이 뒤따른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 역설적인 의미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적정성'은 오히려 특사를 심사하는 기준을 우리 사법권의 권위, 법치주의의 원칙, 국민들의 법감정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지다. 제도는 악용하려는 쪽에서 헛점을 파고들면 무력화된다.

부적절한 사면은 이 전 정권들도 얼굴 두껍게 강행해 온 악습이다. 정도가 달랐을 뿐이다.

특별사면의 본질은 대통합 또는 대화합에 있다. 그것은 민심을 기반해야 얻을 수 있다.

이번에 사면된 인물들 55명 가운데 5명의 용산참사 관련자 등 몇명을 빼면 그 면면이 기득권층이다.

여기엔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사건에 연루된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이대통령을 보좌했던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 김연광 전 정무1비서관도 포함됐다.

게다가 이대통령의 사돈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그룹 사장까지 섞여있다. 이 대통령의 군색한 '친인척 배제' 표방도 설득력을 잃었다.

계층간 갈등 부추기고
범죄에 악용되는 수단

빈부 양극화로 벼랑끝에 내몰린 서민들이 공감할 합리적인 설득력을 갖추지 않고, 일방통행식 사면으로 오히려 갈등을 부추겼다.

이는, 화해의 산물인 '사면'을 범죄의 수단으로 쓴 것밖에 달리 생각할 수 없는 지점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저지른 민간인사찰에서 보여지듯이, 대통령과 그 뜻을 수행하는 자가 '일심동체'라는 견지에서 그들은 공범이다.

반성이 없는 정권이다. 반칙을 밥먹듯이 하는 선수가 계속 경기장에 남는 새로운 룰을 만든 정권이다.

박근혜 정권이 반면교사할 점이다.

지금까지 은사를 받은 인물들이 차기 정부의 주도적 위치에서 기생한다면, 법치를 통치이념으로 표방하는 박근혜 정부의 정체성이 출범 직후부터 흔들리게 된다.
철저한 주변 정지작업이 필요하다. 대선기간 중 제시했던 공약들을 통틀어 압축하면, '신명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로 집약된다.

사는 것이나 경기가 재미있으려면 반칙이 없어야 한다. 특사가 정치사면은 최소화하고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 사면의 기준이 모호해 계속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면, 사면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사면 행위가 범죄자를 구제하는 것으로, 죄를 지으면 책임을 지도록 되어있는 사회상궤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끝내 법과 원칙을 지킨 사면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박근혜 당선자는 부정부패와 비리 관련자들을 사면한데 따른 모든 책임은 이 대통령에 있다고 질타했지만, 사실 이번 사면의 후폭풍은 박근혜 당선자가 감당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