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도대체 무엇이 의사며 검사며 판사를 이토록 무모하게 만들었을까. 시체를 해부해서 최종적으로 심폐정지에 영향을 미친 다른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것이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기록한 것을 옳다고 입증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국민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외인사가 아니어야만 자유로워지는 주체를 향해.

우리에겐 공신력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사회란 이해관계의 총체다. 사회생활이 갈등과 충돌의 연속인 이유다. 신체, 재화, 신념의 가치는 전문가들이 매기고 그 보호는 국가가 한다. 우리는 그런 체제 속에 살고 있다.

만약 분쟁의 해결을 개별 당사자들에게 맡겨 둔다면 사회는 붕괴되고 말 것이다. 분쟁은 장기화되고 비화 일로를 걸어 방방곡곡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판단의 권한을 부여받는 자가 그 영역 안에서 존엄한 이유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을 믿을 수 없게 된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되는가. 무정부 사회에 떨어지거나 이해관계자들 간의 충돌로 폭동이 일어날까. 아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사회에 길들여졌으니 검은 거래가 횡행하게 될 것이다.

거짓된 판단 혹은 조작된 판단이 공공연히 비싸게 교환되고, 부와 권력은 자기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팽창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그 극지점에서 어느 한순간에 폭발할 것이다. 그 시점은 그런 압력을 국민들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국민들의 피로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 의사의 사망진단서와 대법원 3부의 판결이 우리가 서 있는 지형을 웅변한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는가. 저런, 우리는 정녕 얼마 남지 않았는가.

#광장에서

누군가의 칼부림에 A가 자상을 입었다. 제때 치료하지 않았다. 칼에 있던 파상풍균이 증식해 온몸에 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근육이 경직됐고 심장이 마비되어 호흡곤란으로 사망했다. 그렇다면 A의 사인은 심폐정지인가.

의사는 사망진단서에 근육 경직 및 심장마비 증세에 의한 병사라고 기재하는 것인가. 일반 국민은 그 사망진단의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대한의사협회의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누구든지 A의 주검이 자상에 의한 파상풍의 결과라는 것을 안다.

상식이다. 사망의 원인이 외부에 의한 것(외인사)이다. 고 백남기 농민은 직사 된 물대포에 맞아 바닥으로 나가떨어졌고, 도로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혼수상태에 빠졌다. 외상성뇌출혈을 일으킨 위중한 상태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이어오다가 300여일 만에 숨졌다.

그렇다. 국민들은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의 사인을 안다. 하지만 서울대학병원의 담당의사는 그런 상식을 비웃었다. 사망진단서에 마땅히 '외인사'로 기재하지 않고, '병사'로 기재했다. 심폐정지가 사인이라는 것이다.

전문영역을 뭘 안다고 깝죽거리냐는 표정으로 목에 깁스를 했다. 그의 자존감이 하늘을 찌른다. 서울대학병원과 서울대 의과대학이 합동으로 구성한 특별조사위원회의가 내린 고 백남기 농민의 '외인사' 판단에 되레 항변한다.

그는 유족들이 환자의 급성신부전에 의한 체외 투석을 거부했기 때문에 '병사'로 기재했다고 주장한다. 증세를 처치하지 못해 사망하면 그 사인을 달리 기재한다는 어떤 지침이 꽁꽁 숨겨져 있나 보다. 뭐가 이렇게 어려운가.

문제는 사법기관의 태도다. 검찰은 망자의 사인이 불확실하니 부검이 필요하다며 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한 것이다. 그런데도 특별조사위원회는 담당의사의 사망진단서가 대한의사협의회 지침과 다르다고 공식 확인하면서도, 수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애매한 태도를 견지한다. 국민들은 헷갈려 망연자실이다. 잘났다 너희들, 무식한 우리가 죄로구나.

102명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생들이 선배들에게 길을 물었다. 사망의 종류는 선행사인을 기준으로 선택하게 되며, 질병 외에 외부 요인이 없다고 의학적 판단이 되는 경우에만 '병사'를 선택한다는, 자신들이 배운 법의학을 제시하면서 처절한 수치심을 표명했다.

그들은 또,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며, 물대포라는 유발요인이 없었다면 고 백남기 씨는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외인사'에 해당하는데, 담당의사가 의학적·법적으로 명백했던 고인의 사인을 모호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토록 명백한 오류가 단순한 실수인지, 그렇다면 왜 이를 시정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만약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이런 논란이 빚어지게 되었는지 해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에 입각해 자신들이 소명으로 삼고자 하는 직업적 양심이 침해받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청한다고 했다. 권력의 입맛에 맞는 담당의사의 사망진단서와 특별조사위원회의 태도는 후배들의 입에서 모래알이 된 것이다.

담당의사는 자신의 법의학 소견이 실수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처치를 거부한 유족 핑계를 댄다. 어불성설이다. 그런데 이를 기화로 부검영장이 발부됐다. 담당 검사도 판사도 백씨의 명백한 외인사를 부정한다.

도대체 무엇이 의사며 검사며 판사를 이토록 무모하게 만들었을까. 시체를 해부해서 최종적으로 심폐정지에 영향을 미친 다른 이유를 찾아낸다면 그것이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기록한 것을 옳다고 입증이라도 한다는 말인가.

국민들의 시선은 한 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외인사가 아니어야만 자유로워지는 주체를 향해.

#법정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각각 시차를 두고 제기한 동일한 사건이 대법원 2부와 3부에 배당됐다. 격동기인 1949년 5월 대구에서 경찰이 무고한 민간인들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한 사건이었다. 이 가운데 한 가족이 풍비박산 났고, 빨갱이 낙인이 찍혀 밑바닥을 전전하던 아들이 62년(2011년)만에 어머니와 함께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과 2심은 고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해 배상액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대법원 2부도 원고(어머니)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아들이 원고인 대법원 3부는 손해배상의 소멸시효가 끝나 고등법원의 판결은 틀렸다며 원심의 결정을 파기했다. 이는 피해자가 학살당한 1949년 5월을 기준으로 통상의 소멸시효기간 5년을 적용한 결과다.

그러나 지방법원과 고등법원, 그리고 대법원 2부는 "국가적 혼란기에 경찰과 군인이 저지른 위법행위는 외부와 유족이 알기 어렵고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와 결정이 있기 전까지 국가가 대구 10월 사건을 조사한 적이 없기에 소멸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국가의 잘못이 더 크기 때문에 소멸시효는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나온 2010년 3월부터 계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2부와 3부가 동일한 사안에 완전히 다른 가치판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부와 3부 대법관들의 판단을 가른 '소멸시효'는 진실화해위원회에 대한 인식차가 아닐 수 없다. 국가권력이 과거사의 진실을 정면으로 만나서 부당한 피해자들을 위자하고 사과하며 억울한 이들의 원한을 해원하는 것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한다는 약속이며, 그런 신뢰를 바탕으로 분열된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사회통합의 일환이다.

하지만 치부를 드러내기를 회피하는 국가권력이라면 그런 활동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우익이거나 당시 사건의 가해자의 후손들이거나, 국가권력을 행사하는 지위에 있는 자들이란, 잘못을 시인하는 자체가 권력누수를 야기한다고 맹신한다는 걸 현재의 국가권력이 다양한 행태로 방증하고 있으니까.

애초에 진실화해위원회가 없었다면 재판도 성립할 수 없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은폐되거나 조작된 과거의 실체적 진실을 가려 과거와 현재 사이에 끊긴 길을 복원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국가권력에 의해 재판도 받지 못한 채 학살당한 이들의 시간은 정지된 상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 사건의 조각들을 온전히 재구성하여 시계를 비로소 다시 돌게 하는 독립적인 국가기관이었다. 정식 이름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다. 이명박 정부에 의해 폐지되기 전까지 입법·사법·행정 3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그 기능 가운데 나라에 몸 바친 의사들에 대한 재조명을 제외하면, 광복 이후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인권 유린과 폭력 학살 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고 은폐된 진실을 밝혀 과거와 화해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한마디로 묻혀있던 국가권력의 악행을 단죄하는 초법적 기구였고 그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한시적 기구로 운용됐다. 따라서 이 기구가 청산해야 할 과거로 결정한 사건의 시효는 재구성된 사건이 공표된 순간부터 개시되는 것이 마땅하다.

법관은 양심에 따라 재판을 심리하는 독립기관이다. 그런데 법관이 저마다 다른 양심으로 재판을 주재한다면 1심, 2심, 상고심이 따로 있을 까닭이 없다. 법원마다 다르게 판단하는 일이 빈발한다면 사법체계는 혼돈 속에 빠져들 것이다.

판결은 합법성을 기초한 규범판단과 진위여부와 타당성을 전제하는 사실판단으로 이루어진다. 판결은 그와 같은 법의 선언이고, 법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법의 권위를 드높이는 일이다.

이 같은 법관의 본분을 준거하면, 법관은 법률의 의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적용의 기준이 되는 의미와 내용을 정확하고 상세하게 보여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법적 의의를 명확하고 일관되게 선언해야 한다.

이렇게 법관의 판결은 쟁송에서의 법적 의의를 선언하는 것이어야 하고, 그러므로 법관이 양심은 법률의 의사에 철저히 종속되어야 한다. 타락한 법관은 규범판단은 회피하고 사실판단만을 한다. 법관의 양심이 법위에서 멋대로 놀 때 똑같은 사건에 대한 유무죄가 달라지고 형량이 달라진다.

왜 이렇게 누누이 법관의 기본을 말하는가. 기본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기 정체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불성실하고, 무절제하며, 존엄성을 상실한 타락한 양심이 있을 뿐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관들은 현행 소멸시효는 준거했지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은 살피지 않았다.

그 법에 의해 구제되는 자의 사건이 왜 현행 소멸시효에 구속되지 않는지, 혹은 소멸시효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면 왜 그러한지를 정확하게 해석하려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의 의의를 살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법관의 본분을 유기했거나 모르쇠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소멸시효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판시한 원심의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 타당성을 스스로 논증할 수 있어야 하는데, 법관이 그 위상을 잃고 힘만을 가지려 한다면 그것은 법과 국민에 대한 모독이다. 가치 차별적 괴리를 수호하고자 하는 것은 자기 편익이나 외세의존적 굴종의 표상이다. 배우지 않았는가. 판사는 현실과의 타협, 굴종을 넘어 진리의 전사가 되어야 하지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