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수로 녹아내린 904미터 석회암동굴

일반인들 난입해 마구잡이 훼손

문화재청, 환경정비 보존활용계획 용역

천연기념물인 익산시 천호동굴이 관광자원으로 개발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북대 오창환(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천호동굴은 호남지역에서도 보기 드믄 동굴자원이고 더구나 평야지대에서는 보기 힘든 석회암 동굴로 활용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천호산 자락에 있는 여산면 태성리 천호동굴은 지층 내부에 지하수가 흐르면서 석회암층이 녹아 생겼는데, 입구에서 출구까지의 길이가 545미터, 옆으로 뻗어나간 것까지 합하면 904미터의 거대한 동굴이다.  

천호동굴 내부1

천호동굴 내부2

비좁은 통로가 나 있는 동굴 내부.

일반인 난입으로 절단된 종유석.

정부는 1966년 2월 28일 이곳을 천연기념물 177호로 지정했지만, 관리가 매우 부실해 방치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내부 곳곳이 훼손됐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익산시의 요청에 따라 동굴을 정비해 보존하면서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용역을 지난해 11월 착수했다. 천연기념물로 묶인 지 거의 50년이 흘렀기 때문에 문화재청에 거는 기대가 크다. 

한반도 역사 담은 동굴  

천호동굴의 정확한 연령대는 학계에서도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자들의 오랜 연구로 대강은 알려졌는데, 이번 용역에 연구자로 참여하고 있는 오창환 교수에 따르면, 천호동굴은 신원생대에서 고생대말기에 이르는 약 8억~3억 년 전 충북 옥천군 일대를 중심으로 형성된 ‘옥천대’(옥천습곡대 또는 옥천변성대) 서남부 지역 변성퇴적암층 내에 있는 대리암층에 있다.

변성이라는 건 기존 암석이 기온이나 압력에 의해 성질이 변화되는 것이고, 대리암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대리석이다.

천호동굴은 원래 바닷물로 덮여 있는 곳에 석회암 물질이 퇴적돼 만들어진 지대에 있었는데, 고생대 말기인 페름기와 중생대 초기인 트라이아스기 사이인 2억5천만~2억3천만 년 전 한반도에 거대한 판의 충돌이 일어나면서 기온과 압력으로 인해 석회암이 대리암으로 바뀌었다.

이후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빗물이 대리암층에 스며들어 지하수 형태로 흐르면서 광물질이 녹아 동굴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 교수는 “천호동굴은 대리암동굴이라고 해야 정확하지만 성분이 석회암과 비슷해 통상 석회암 동굴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천호동굴은 공간이 넓고 긴 ‘주굴’과 주굴 옆으로 난 가느다란 ‘지굴’로 나뉘는데, 주굴은 입구에서부터 굴이 끝나는 막장까지 545미터이고, 지굴은 359미터로 총 904미터에 달한다. 

내부에는 석회암동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종유석과 석순, 동굴진주, 동굴산호, 석화 등이 즐비하지만, 수십년 방치되는 동안 도굴꾼들이 마구잡이로 채취하는 바람에 종유석이나 석순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문화재청이 '66년 천연기념물 177호로 지정해놓고도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굴 입구는 70년대에 폐쇄했으나 도굴꾼들이 난입하는 바람에 '88년 철문을 설치하고 자물쇠를 채웠는데, 이후에도 훼손이 계속돼 '96년 이중으로 철문을 설치했다.

일반인들과 도굴꾼들이 들어와 동굴 안에는 페인트로 휘갈긴 낙서가 즐비하고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나뒹굴고 있었으며, 끊어진 종유석과 석순 가닥이 부지기수다. 

보존과 개발 시급

천호동굴의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동굴 정비와 함께 친환경적 개발이 시급한 실정.

철문으로 닫아놔도 도굴꾼들의 난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내부를 정비하고 학술적 목적으로 이용하는 동시에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활용하면서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재청은 익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11월 전북대산학협력단에 ‘천호동굴 보존 및 활용계획에 관한 용역’을 맡겼다.

이후 현장조사를 거쳐 동굴 내부의 낙서를 지우고 쓰레기를 치웠는데, 5월 말 현재 정비작업이 거의 마무리됐다.

천호동굴은 입구는 있지만 출구가 없고, 유명 관광지로 개발된 동굴들과는 달리 내부가 두 사람이 오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은 구간이 있어 독특하다.

“호남에 이런 형태의 동굴이 흔치 않아서 학술적으로 보나 희소성으로 보나 활용가치가 높습니다. 하지만 내부가 좁아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구경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주변 지역과 연계해 동굴탐사체험과 같은 용도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오 교수가 말했다.

익산시는 동굴 인접지역을 매입해 편의시설을 갖추고 주변의 폐광산, 천호성지, 왕궁리 유적, 미륵사지, 주얼팰리스 등과 연계해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관건은 문화재청이 천호동굴 개발비용의 일부를 부담할 것인가의 여부다.

동굴을 개발하려면 보존과 관리를 위한 여러 설비와 인력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익산시 관계자는 “동굴을 방치하지 말고 개발해야 한다는 시민여론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문화재청이 용역결과를 검토하고 내부 논의를 거치면서 익산시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경선 기자

낙서로 훼손된 동굴 내부.

 도굴꾼들에 의해 끊어진 석순

봉쇄된 천호동굴 입구. 옆 사진은 전북대 오창환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