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 만지지 못한 것들을 시로 쓸 수 있어야 읽는 사람이 재미있습니다."

'가난한 사랑의 노래', '탁타' 등으로 유명한 시인 신경림(76.사진)이 지난 12일 익산을 방문해 '시 읽는 재미'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연은 희망연대(대표 김정필)의 공동체시민아카데미 사업의 하나로 이뤄진 것인데, 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신경림 시인은 우선 시(詩)가 당대의 현실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시를 읽으면서 현실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데, 이게 시를 읽은 첫번째 재미"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시는 중국 두보의 시인데, 두보가 살았던 시기는 안록산의 난으로 시끄러웠다.

이런 상황에서 두보는 개인적으로는 뚜렷한 직장을 못 얻어 궁핍하고 방황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로부터 현실과 삶에 대한 고민이 시로 이어졌다. 따라서 두보의 시를 보면 당시의 상황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신경림 시인은 이어 "시는 남과의 소통"이라며 "쉬우면서도 간결하고 정확하게 써야 읽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는 서구에서 맨 처음 구어체를 사용해 시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그는 시집 끝머리에 "시인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고 힘 있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썼다고 한다.

신경림은 "요즘 나오는 시를 심사하다 보면 너무 어려워 이해를 못하는 작품들도 종종 본다"며 "이런 작품은 읽는 사람과 소통이 안돼 좋은 시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렵다고 다 안 좋은 시는 아니다. 다소 어려워도 독자가 시의 매력에 빠지게 할 수 있으면 좋은 시가 될 수 있다. 서정주의 동천(東天)이 사례다.

신경림은 또 시(詩)는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 시는 짧지만 전달력이 강해야 한다. 이런 저런 설명이 많으면 재미가 없다. 설명이 없어도 머리 속에 그림이 떠오르게 하면 좋은 것이다.

시(詩)는 발견(發見)이기도 하다. 똑 같은 것을 봐도 시인은 남이 못 본 것을 본다. 이런 면에서 시는 탐구 내지 발견인 것이다.

보통 시는 죽음, 사랑, 어머니, 고향 등을 소재로 많이 쓰는데, 남들이 하는 것들을 따라하면 좋은 시가 될 수 없다. 천상병의 귀천(歸天)은 '죽음'을 다른 시각으로 다룬게 흥미를 끈다.

시는 특히 리듬감이 있어야 하고 사투리나 흔히 쓰는 말을 잘 구사해야 하며, 읽으면 감정이 우러나는 것이어야 한다. 이래야 읽는 맛이 있다. 

자연스럽게 읽힐 때 리듬감이 생기고, 적은 단어를 써도 좋은 시가 된다. 김소월은 단지 500단어밖에 쓰지 않았는데,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서정주는 전라도 사투리, 박목월은 경상도 사투리, 백석은 평안도 사투리를 잘 썼다. 유치환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많이 다뤘는데, 그리움, 애정, 슬픔 등을 우러나게 하는 시로 유명하다.

신경림은 "요즘 시는 순 엉터리가 많다"고 지적하면서 "진정성이 없으면 감동을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참석자들의 질문이 이어졌는데, 친일 한 서정주 시인 얘기가 나왔다.

신경림은 "나는 서정주의 제자이지만, 미당문학상 만들 때도 참여하지 않았다. 심적으로 갈등이 많았는데, 최근 마음 속으로 화해했다. 그의 시를 버리는 것은 손실이 크다고 생각했다. 왜 친일했냐고 물었더니 '그때는 일제가 100년 갈 줄 알았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서정주는 촌스럽고 소박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이어 "시인은 모순덩어리인 것 같다. 인간적으로 완벽한 사람 중에는 좋은 시인이 없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고민과 갈등이 많은 사람이 시를 쓰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이 공공선과 꼭 일치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자신의 쓴 시 가운데 '갈대'를 낭독한 신경림 시인은 최근 이영광이나 송경동의 시를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등산으로 건강을 지킨다고 한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