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정신적 대통령, 그대를 잊지 못하리. 그대가 몸 바쳐 그토록 열망하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눈물겨운 꿈의 세포는, 살아서 이 시대를 견디고 있는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2012년 새해 아침을 탈환하리." 시인 정희성은 민주주의자 김근태를 이렇게 조상하며 보냈다.
김근태(1947-2011)는 독재라는 '뱀'에 맞선 '두꺼비'였다.

두꺼비가 뱀에 잡혀 먹으면 뱀은 두꺼비의 독으로 죽고, 두꺼비 새끼들은 뱀을 자양분 삼아 새롭게 태어난다.

이렇듯 김근태는 ‘독사’ 같은 독재정권이 가는 길에 기꺼이 몸을 맡긴 민주주의자였으며, 독재를 죽이고 민주주의를 탄생시킨 전환시대의 투사였다.

그런 그가 지난해 12월 30일 고문 후유증으로 타계하고, 3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묻혔다.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했을 뿐인데, 시대는 양심에 순응했던 그를 민주투사로 만들었다. 
절대권력에 대해 어떤 비판도 허락하지 않았던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1965년 서울대에 입학한 김근태는 '67년 제적과 함께 군대로 끌려갔다.

그해 5월과 6월 연이어 치러진 6대 대통령 선거와 7대 총선거에서 정부와 여당(민주공화당)이 부정선거를 자행하자 '선거 무효 및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집회를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제대 후 김근태는 '70년 복학을 할 수 있었는데, 이듬해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지명수배 됐고, 박정희가 시해된 '79년 10.26사태 때까지 도피생활을 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김근태를 비롯한 서울대생 4명과 사업연수원생 1명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필두로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은 대학생과 야당을 비롯한 제야세력의 민주화운동을 뿌리 뽑아 영구집권을 꾀하자는 의도였다.

김근태의 민주화운동은 80년대에도 이어졌다.

'79년 12.12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 초기시절인 '83년 김근태는 재야 민주화운동의 산실이 됐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 ‘85년 투옥될 때까지 두 차례 의장을 맡았다. 이때 그는 치안본부(경찰청)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보름 가까이 8차례의 전기고문과 두 번의 물고문을 받았다.

민청련은 민주화운동이 정치권이나 종교에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깃발을 올려야 한다는 당시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광범위한 민주화운동조직 건설에 힘썼다.

민주화운동이 독재정권을 크게 위협했던 '87년 김근태는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책을 통해 끔찍했던 고문경험을 털어놓는다.

노태우 정권이었던 '89년 김근태는 '전국민족민주연합'(민민련)을 결성, 집행위원장을 맡았다가 구속돼 '92년까지 감옥생활을 한다.

민민련은 민주화운동세력들이 결집한 단체로, 주로 각종 경제 관련 정책에 대한 비판 및 대안 제시, 국가보안법 폐지 운동, 주한 미군 철수 투쟁을 주도했다.

‘92년 문민정부(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 김근태는 제도권 정치에 눈길을 돌렸다. '95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새정치국민회의' 부총재로 정계에 발을 디딘 그는 '96년부터 서울에서 국회의원에 내리 세 번 당선되면서 재야 운동권 세력의 대부로 우뚝 섰다.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냈고 '06년 열린우리당 당의장을 역임한 그는 '07년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08년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지난해부터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으로서 '민주진보 대연합'을 위한 활동을 해오다 숨졌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