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항소심 2차 공판, 선거캠프에서부터 인수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동고동락했던 동료가 나서 불리한 진술을 쏟아내며 직격탄을 날린 이날 재판에서 박경철 시장은 내내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재판에 임했다.

희망후보 보도자료와 관련 그동안 줄곧 선대본부장이었던 최 씨가 전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는 진술이 나오면서 향후 항소심 결과에 적잖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 박 시장은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 피고인이 모두 관여했다

이날 검찰 측은 증인 김 씨를 상대로 당시 선거캠프 내부 문서는 물론이고 외부로 나가는 보도자료는 모두 피고인의 확인이 이뤄졌다는 진술을 이끌어냈다.

선거캠프에서의 지위와 역할을 묻는 질문에 김 씨는 “지인의 소개로 선거를 앞둔 지난해 5월 17~8일경에 만나 기획·정책수립·홍보·언론대응 등을 제의받았고, 실제 모든 보도자료와 TV토론회 자료 준비 등을 직접 담당했으며, 최 본부장은 외부 손님 대응을 주로 맡았다”고 답했다.

5월 30일자 희망후보 보도자료와 관련해서는 “5월 28일 현수막이 온 것을 확인하고 이를 이용한 홍보가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는데 보도자료가 배포됐고, 언론보도가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다”면서 “내가 보도자료를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된 일인지를 최 본부장에게 강하게 추궁하자, 최 본부장에게서 ‘시켜서 한 일이지 임의로 할 수 있겠느냐’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진술했다.

이어 “이후 실제 희망제작소 측과 정책협약을 맺은 이한수 후보 측의 반박이 나오는 등 논란이 일자, 피고인은 직접 나에게 재반박 보도자료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면서 “희망후보 자격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고 반박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어 적절치 못하다고 보고했지만 피고인은 ‘안하려면 말아라’라는 식의 역정을 냈고, 결국 내가 보도자료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또 “초안을 가지고 가 보고하자 더 강력하게 만들라는 지시가 이어졌고 대응을 안 하는 것이 좋겠다고 재차 강조하며 만류했지만, 결국 수정을 거친 끝에 최종안이 배포됐다”고 덧붙였다.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5월 30일자 희망후보 보도자료 배포 부분의 판단이 뒤집힐지 관심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그동안 검찰 조사와 재판과정에서 피고인과 최 본부장 모두 희망후보 관련 보도자료는 최 본부장이 전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왔지만, 이날 김 씨의 증언은 이와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 방송토론회 소각장 발언, 근거 부족했다

아울러 검찰은 방송토론회 소각장 발언 자료를 만들 것을 피고인이 지시했지만, 근거가 부족해 별도의 자료를 만들지 않았다는 진술도 이끌어냈다.

방송토론회 자료준비를 직접 했는지를 묻는 검찰의 질문에 김 씨는 “선거캠프에 합류할 당시 역사문화도시나 국제안전도시, 서민지원 등에 주력 방향의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만, 당시 새정연 공천과정에서 부채 문제가 핵심으로 떠오른 만큼 별도의 노력 없이 핵심 사안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부채문제·부패척결·재정자립도를 중점 사항으로 해야 한다고 적극 건의했다”면서 “방송토론회 자료준비도 단순 자료 수집은 캠프 내 선거운동원으로 있는 학생들을 시키고 이를 종합적으로 취합해 최종 자료를 만드는 것은 내가 도맡아 했다”고 답했다.

소각장 발언과 관련해서는 “피고인의 지시가 있었지만, 언론보도 스크랩을 토대로 자료 수집을 해야 하는데 언론보도 자체가 한두 건밖에 없어 자료를 만들 수가 없었다”면서 “사적인 자리에서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기에는 객관적이고 공신력 있는 근거자료가 부족해 부적절하다고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이에 대해서는 변호인 측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집중적으로 질문을 쏟아냈다. 언론보도 외에 자료준비를 위한 다른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추궁했다. 하지만 김 씨의 노력과는 별도로 오히려 변호인 측이 당시 소각장 발언의 관련 근거가 부족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셈이 됐다는 평가다.

재판부 또한 직접 이 부분을 재차 확인했다. 김 씨에게 언론보도 확인 외 별도의 노력이 있었는지를 되묻고 “증인이 소각장 관련 자료를 만들어 보고하지 않은 것이라면, 피고인이 독단적으로 발언했거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것이냐”고 묻자 김 씨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 파면 김 씨 증언, 믿을 수 없다

변호인 측은 김 씨가 선거캠프 내부에서 구성원들과 원활한 관계가 아니었다는 점과 선거 이후 익산시청 전문계약직 공무원으로 임용됐다가 파면된 점, 1심부터가 아니라 항소심에 이르러 갑자기 증인으로 나선 점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하며 진술의 신빙성을 탄핵하려는데 주력했다.

변호인 측은 김 씨의 선거캠프 합류 과정에서부터 캠프 내에서의 지위와 역할 등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김 씨는 “지인의 소개로 지난해 5월 19~20일경 캠프에 출근하기 시작했고 뒤에서 도와주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3~4일 후 피고인이 직접 선거사무원으로 등록하라고 해 등록했다”면서 “보도자료 작성과 언론대응 등을 주로 맡았고, 방송토론회 자료 준비나 기획업무도 담당했다”고 밝혔다.

기자들의 명단과 연락처를 최 본부장이 가지고 있었는데, 언론대응을 담당한 것이 맞느냐는 질문에 “보도자료가 배포되면 구체적인 문의가 올 경우 직접 작성한 사람이 나이기 때문에 대부분 나한테 연결됐고, 그래서 나도 기자들 명단과 연락처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합류 초기에는 최 본부장과 하루 이틀 정도 보도자료를 공유하는 기간이 있었지만, 이후에는 모든 보도자료를 내가 작성해 총무팀을 통해 배포했다”고 답했다.

파면 이유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김 씨는 “처음 문제제기는 이권개입 의혹이었지만, 나중에 파면의 주된 이유는 품위 손상이었다”면서 “파면과 이번 증언과는 연관이 없는 만큼 더 이상 거론하지 말아 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선거캠프 내부에서 왕따를 당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대부분의 선거운동원들이 승리에 대한 의지를 보이지 않았고 시간만 때우려는 모습이 엿보였으며 심지어는 피고인조차 밖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한다는 충고에도 안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던 점 등 상식적인 캠프가 아니었다”라며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언성을 높인 적이 서너 차례 있는 것은 맞다”고 답변했다.

이어 “캠프 내부에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금기시됐고 경직된 분위기 때문에 피고인에게 어느 누구도 의견제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나는 사심이 없었기 때문에 최소 하루 2~3회 정도 자연스럽게 독대를 하면서 보고를 했고, 이런 부분에서 주위의 눈총을 받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어 변호인 측이 인수위 시절 피고인을 적극 돕겠다는 입장이었고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갑자기 증인으로 나서 불리한 증언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김 씨는 “1심 당시에는 소청심사가 진행 중이었고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나오지 않았지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공익적인 목적을 가지고 나서게 됐다”면서 “지금도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고 말했다.

만약 파면되지 않고 공무원 신분이 유지됐을 경우에도 증인으로 나섰을 것이냐는 질문에는 “제 성향상 아마 그랬을 것”이라고 답했다.

# 향후 일정은

다음 3차 공판은 오는 4월 14일 오후 3시 30분에 열릴 예정이다.

이날 재판부의 다음 기일 결정과 증인 및 증거채택과 관련해 검찰 측과 변호인 측 간 약간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먼저 검찰 측이 피고인의 가필이 이뤄진 지식인모임 지지선언문과 그동안 김 씨가 직접 작성한 보도자료가 담긴 CD를 증거로 신청하자, 변호인 측은 “지지선언문의 경우에는 사전검토가 부족했고, CD의 경우에는 문서와 달라 별도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증거채택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어 변호인 측이 소각장 의혹제기 언론보도를 한 기자 두 명에 대한 문서송부촉탁 신청 결과 받은 수사기록 및 공판기록과 언론중제위원회 구제절차기록 그리고 이날 불출석한 증인 희망제작소 윤 모 씨에 대한 사실조회 형식의 기록을 증거로 신청하자, 검찰 측 또한 관련 기록들을 검토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표시했다.

또 변호인 측이 선거캠프 총무팀장, 전 시의원, 소각장 선정 평가위원 두 명, 채규정 시장 재임당시 비서실장, 소각장 선정 당시 코오롱 측 팀장, 컨소시엄 업체인 제일건설 이사 등 무려 7명의 증인을 신청하자 신속한 재판을 위해 부적절하다며 반대했다.

특히 전 비서실장의 경우 채규정 시장 본인의 진술이 확보돼 제출돼 있으며 코오롱 팀장과 제일건설 이사의 경우에도 조사가 이뤄져 서면으로 제출된 상태임을 언급하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증거 및 증인의 채부결정을 보류했으며, 다음 기일이 도래하기 전 기일 외에 결정해 가능한 증인부터 다음 기일에 신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