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카를 일본에서는 안숙(安宿)이나 비조(飛鳥)로 표기한다. ‘안숙 아스카’의 어원은 “유랑하던 백제인들이 비로소 안주(安住)할 수 있는 땅을 찾았다”이고, ‘안슈쿠(安宿)’로 불렸다가 음이 변하여 ‘아스카(安宿)’로 불린 것으로 풀이 된다. ‘비조 아스카’의 어원은 “백제 이주 집단이 나는 새와 같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 처음으로 안착했다‘이고, 이를 ’날아 온 새’란 의미의 ‘비조(飛鳥)’로 쓰는 한편, 내일이라는 뜻의 ‘아스(あす)’와 땅이라는 뜻의 ‘카(か)’ 음이 합쳐져 ‘아스카(내일의 땅)’로 불린 것으로 풀이된다.

아스카문화는 스이코 천황(6세기 말부터 7세기 전반) 때 쇼토쿠태자와 소가대신(蘇我大臣)이  꽃피운 일본 최초의 불교문화다. 아스카(飛鳥) 지역은 현재의 나라(奈良) 남부와 오사카 동남방 일원을 일컫는다. 

쇼토쿠 태자와 소가대신(蘇我大臣)이 불교를 장려한 것은 불교가 기존의 혈연적 집단과는 무관한 통합정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불교가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려 했던 태자와 대신의 의도에 부합하는 사상이었던 셈이다.

태자와 대신이 방향성을 제시한 이후 일본 내에서는 명문 세도가들에 의한 사찰 건립 붐이 일었다. 소가씨(蘇我氏) 집안의 아스카사(飛鳥寺)를 비롯해 조메이 천황(舒明天皇)의 구다라다이사(百濟大寺), 쇼토쿠태자의 시텐노사(四天王寺)와?호류사(法隆寺), 도래계(백제계인) 하타씨(秦氏)의 고류사(廣隆寺) 등이 당시 창건돼 일부는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일본의 대표적인 사찰들이다.

활발한 사찰 창건은 사공(寺工, 사찰 건축 기술), 와공(瓦工, 기와 제조 기술), 화공(畵工, 회화 제작 기술) 불모(佛母, 불상 제조 기술자)등의 기술적인 측면과 예술적 측면이 융합돼 화려한 아스카 문화의 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아스카문화는 일본 고대문화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기적으로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전반까지, 지역적으로는 오사카부 동남방을 포함한 긴키(近畿)지방과 나라현에서 발전했다. 주목해야할 점은 아스카 문화가 백제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불교문화라는 점이다.

아스카 문화의 대표적인 사찰은 소가노우마꼬(蘇我馬子)가 건립한 일본 최초의 본격적 사찰, ‘아스카사’이지만 현재는 비조대불 등 유물만 남아있어 가람의 전체규모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나라현 이카루가에 있는 법륭사는 창건연대가 671년 이후이지만 아스카 건축양식을 잘 살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법륭사(호류지, 法隆寺)는 쇼토쿠(聖德)태자가 창건했는데, 일본 최고의 국보이며 일본인이 가장 자랑하는 절이다. 일본에서는 최초로 1993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걸출한 목조건축이다.

본 란은 앞서 백제 무왕대의 명장들이 바다를 건너가 법륭사를 창건했다는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법륭사가 남북으로 흐르는 냇물을 매립해 가람을 세웠는데, 창건연대가 앞서는 익산 미륵사 역시 메운 연못 위에 가람을 세웠다는 점을 주목했다.

물은 용이 사는 곳이고 용(전륜성왕)이 미륵신앙을 수호한다는 불교사상이 그대로 익산 미륵사에서 나라현 이카루가의 법륭사에 이식된 것이다. 또 고구려, 신라는 물론이고 부여, 공주에서도 나오지 않은 육엽연화인동문 기와가 익산 미륵사에서 나왔고, 일본에서는 나라현의 법륭사와 그 이후에 창건된 오사카 동남방의 아스카 지역의 몇몇 사찰터에서 발굴된 점도, 익산의 불교문화가 아스카 문화의 본류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런데 일본의 저명한 고고학자 ‘우에하라 마사토’는 “인동문(palmette)은 그리스에서 기원해 인도 간다라 불교미술과 결합되었고, 이후 중국 육조시대의 윈캉석불 등을 장식한 다음,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 7세기 2/4분기에 법륭사 육엽연화인동문 기와 속에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한반도는 다만 경유지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리스에서 인도를 거쳐 중국 육조시대까지 온 인동문양이 법륭사에 와서 비로소 기와 안에 들어가 육엽연화인동문이라는 새로운 기와문양이 처음 창안되었다는 것이다. 이어서 우에하라 마사토 교수는 “연꽃잎 속에 인동문을 장식한 기와는 백제말기와 통일신라에도 비슷한 예가 있지만, 그것이 일본 인동문 기와의 직접적 조형(祖型)이 된 것 같지는 않다”면서 익산 미륵사지의 기와와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이만천 씨는 “법륭사와 미륵사 두 사찰 사이에 아무런 교류도 없이 1) ‘여섯 장의 연꽃 잎’, 2) 연꽃잎 속의 인동문, 3) 7개의 연자(蓮子)가 있는 중방, 이 세 가지 요소가 하나도 빠짐없이 서로 같을 수 있겠느냐”며 “우에하라 교수는 익산의 미륵사지 기와를 밝히지도 않고 백제말기와 통일신라에 비슷한 예가 있다고만 하면서 한반도 교량론(한반도는 단지 경유지에 불과하다는 일인학자들의 수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기와뿐 아니라 법륭사에는 익산의 또 다른 고도문화가 이식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주대학 명예교수 ‘오오니시 슈야’는 익산 연동리 석불사의 돌부처와 광배의 양식이 무왕 후반기인 620년에서 640년 사이에 일본 법륭사 금동석가삼존상으로 전해졌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광배의 경우 석불사, 법륭사 다 같이 ‘화불이 7개’, ‘각 화불의 머리 위로 치솟아 오르는 화염이 세 가닥’, ‘연화문 중방의 지름이 6세기의 것 보다 커졌다는 공통점을 들어 석불사의 광배가 법륭사 금당 석가삼존상 광배의 원조가 되는 것이고, 또한 석불사 돌부처의 가부좌를 덮고 있는 가사의 주름이 법륭사 금동석가삼존 석가상의 그것과 닮아서 광배와 함께 불상의 양식이 무왕 후반기에 고대 익산에서 일본 나라현 법륭사로 건너왔다고 보여진다.”

그런데 익산 미륵사의 불교가 일본 법륭사에 이식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법륭사 금당의 본존이 미륵이 아닌 금동석가삼존불인 이유는 뭘까.

이만천 씨는 “성덕태자가 건립한 일곱 개 사찰 가운데 법륭사를 제외하고 모두 미륵, 또는 미륵반가상을 안치하고 있기 때문에 법륭사의 본존 역시 670년 화재 이전에는 나머지 여섯 사찰과 마찬가지로 미륵이 본존이었다가 670년 화재로 소실된 이후 금동석가삼존불로 대체 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정리한다. 참고로 8세기에 성립한 ’상궁성덕법왕제설‘에 나온 성덕태자 건립7사를 열거해보면, 신텐노지(四天王寺),호류지(法隆寺),쥬큐지(中宮寺),가치바나지(橘寺),미네타케지(峰岳寺),이케고지(池後寺),가츠라기지(葛木寺), 이렇게 7사다.

일본의 저명한 미학?미술사학자 우에하라 카즈도 법륭사 금동석가삼존불은 화재 이후 법륜사(법륭사 북쪽 700m 지점에 있는 사찰)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추정한다.

우에하라씨는 “금동석가삼존불은 본채만 180km, 광배가 230kg이나 되는데 화재 중에 꺼내기란 불가능하다. 미륵상은 670년 화재 때 이미 없어지고 이후 법륭사가 재건되면서 법륜사에 있던 불상을 옮겨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면서 창건법륭사(=이카루가사 혹은 와카쿠사, 화재이전의 법륭사)의 본존이 석가상이냐, 미륵상이냐, 하는 문제는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성덕태자의 신앙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다만, 우에하라씨는 석가좌상이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성덕태자가 건립한 7사 중 오사카에 있는 사천왕사 본존의 실체는 1225년 경 쓰여진 ‘태자전고금목록초’에 나타나있다. 여기에 “사천왕사 금당의 본존은 ‘대동연기(사천왕사자재장)’에 미륵이라고 써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803년 사천왕사자재장 ‘대동연기’가 기록될 당시에도 사천왕사 금당의 본존은 ‘미륵’이라는 사실이 확인 된다.

현재 사천왕사 금당의 본존은 반가상 형태의 성덕태자 구세관음상이다. 여러 차례의 화재 등으로 이전의 본존이 거듭 소실된 가운데, 12세기의 도상집 ‘별존잡기’에 있는 그림을 바탕으로 다시 만들었다.

현존 구세관음상은 반가상이지만 사유상은 아니다. 오른 손가락이 볼을 살짝 대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손바닥을 펴 시무외인을 하고 있다는 점이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다르다.

이씨는 “이같은 반가상, 미륵반가사유상을 조금 변형시켰다고 하지만, ‘태자고금목록초’가 밝히고 있는 ‘미륵보살’, 또는 ‘미륵’임에는 틀림없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등신상 크기의 시무외인 반가상(미륵보살상)을 왜 구세관음이라고 하는가. 800년대 들어와 성덕태자 신앙이 구세관음, 또는 여의륜관음 신앙과 결합되면서부터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확인된다. 그렇다면 사천왕사 창건 당시 금당의 본존, 미륵보살상은 언제 만들어졌나. ‘태자전고금목록초’에 “금당에 안치한 금동구세관음상은 백제국왕이 성덕태자 입멸 후 연모 갈망하여 만든 것, 백제국에서 보낸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혹자는 이 반가상이 백제와 관련이 없다는 설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백제양식이다. 왜냐하면 사천왕사 금당의 본존처럼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반가상에는 법륭사 헌납 보물155호 금동보살반가상(38cm)과 나가노현 관송원의 반가상(30cm)이 있고 둘 다 7세기 전반의 시무외인을 하고 있는 백제양식의 반가상이기 때문이다.

덧붙이자면 ‘사천왕사어수인연기’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경전원(사천왕사의 중심가람)에 청룡이 살고 있는 깊은 황릉지가 있다. 청룡에 제사를 지내고 이쪽으로 사찰을 옮겨지었다. 땅에 칠보를 깔았다. 청룡이 항상 지켜준다. 맑은 물이 동으로 흐른다.”

이 씨는 “이 기록으로 사천왕사 창건에 연못과 용이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사천왕사의 금당 서편에 ‘용의 우물’이 있다. 익산 마룡지 부근에도 용샘의 흔적이 남아있다. 육엽연화인동문 기와가 나온 오사카의 용천사에도 용샘이 있다. 이들 사찰과 익산에 용샘이 있는 것은 미륵신앙을 지켜주는 용을 의식했기 때문일 것이다”고 추정했다.

익산 미륵사에는 일본의 사천왕사, 중궁사처럼 미륵반가상이 모셔져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혹자는 나라현의 다이마사처럼 앉아있는 미륵삼존, 혹자는 김제 금산사처럼 서있는 미륵삼존이 안치되어 있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이 문제도 금당의 규모나 구조, 그리고 불상의 재질을 함께 고려해서 접근해야할 것이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