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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 2023-01-30 12: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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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푸르른 황등 ‘동련교회’





한국교회 지표‧금세기 종교의 ‘전범’



보편적인 법칙이나 사실을 탐구하는 인간의 지식 체계가 확장 될수록 종교의 설 자리는 좁아 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이미 과학과 의학의 진화에 힘입어 스스로를 복제하는 문턱을 넘었으며, 영생으로 가는 길목에 서있다. 그 끝에 무엇이 있든 눈앞의 종교와 관련한 상상력은 희박해질 수밖에 없다. 종교계가 태도를 바꿔야 하는 이유다. 현생에서 구원받고 해방을 경험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 인간과 소통이 가능한 거리로 다가서서 인간이 여전히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야 한다. 지난 달 7일 ‘전주 평화의 전당’에서 열린 세계종교포럼은 그런 종교의 새 방향성에 대한 인식이 모여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서지애(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박사과정)씨가 발제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익산 동련교회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은 한 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증언한다. 122년 전 익산시 황등면에 설립 돼 그 설립 정신이 여전히 푸른 동련교회(황등면 501-2번지)는 한국교회의 지표이자 금세기 종교의 전범이다.<편집자 주>


새 세상을 꿈 꾼 백낙규


“삶이 의미있기를 바라며 아득하게나마 현실 너머의 바람을 품곤 하는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일 것이다. 동련교회 사람들의 이야기는 새로운 세상을 막연한 바람으로 놓아두지 않고 민족적 고난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으로, 또 때로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모습으로 이뤄가려 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을 묘사하는 ‘구원’, ‘하나님 나라’, ‘해방’, ‘회복’, ‘자유’는 말과 활자에 머물지 않고, 실제적인 실천과 그에 따른 변화를 가져오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동련교회의 어제와 오늘을 탐사한 서지애 씨가 남기고 싶은 말이다.

그에 따르면 동련교회 사람들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주민이면서, 새로운 세상을 기대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신앙을 동력 삼아 개인적‧공동체적 실천으로 이상과 바람을 실현해 나가려고 애써온 이들이다.

동련교회 설립자는 조선 후기(19세기 후반)를 살았던 백낙규다. 그가 청년이던 당시 한반도는 세도를 거머쥔 이들의 문란과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으로 매우 혼란했고, 탐관오리들의 학정에 반발한 동학농민군들의 항쟁이 한창이었다. 그는 갑오년 10월 동학에 입도해 농학농민군이 됐다.

백낙규의 당시 궤적을 재구성한 증손자 백종근 목사의 저서 ‘하나님 나라에서 개벽을 보다: 토박이 예수꾼 백낙규 장로의 영성과 신앙’에서는 백낙규가 왜 동학에 입도했는지를 간명하게 말해준다.

“전라감사가 동학농민군과 화약(和約)을 맺어 사태가 수습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농학농민항쟁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백낙규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부풀게 했고, 동학에 대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인여천(事人如天), 그렇다.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는 세상으로 바뀐다면 그 자체가 개벽(開闢)이 아닌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동학의 가르침이야말로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이 실천하고 살아야 할 새로운 강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동학혁명군은 패퇴했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 떠돌던 백낙규는 황등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그는 개신교를 만나기 전까지 한 때 품었던 부푼 마음만큼이나 큰 좌절과 울분 가운데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동련교회사를 보면, 보부상으로 장터를 돌아다니던 백낙규가 하위렴 선교사로부터 들은 복음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케케묵은 봉건적 유습과 위 아래로 부패한 나라를 구하고 살리는 것은 ‘먼저 이 옛 사람을 바꾸어 새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그리고 그 사람들을 묶어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라는 ‘복음’은 백낙규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백낙규는 뜻을 함께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1900년 기도처를 마련하고 자발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어려움도 탈도 많던 한 세기의 끝, 그리고 이에 못지 않은 곡절을 마주하게 될 새로운 세기가 밝아올 무렵이었다.


현실에서 구원과 해방을 경험하다


서지애는 특히 동련교회가 외국인 선교사들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꾸려진 교회라는 점을 주목한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에서는 하위렴 선교사가 교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1905년을 동련교회 설립연도로 기록하고 있으나, 동련교회 교인들은 1900년을 창립 원년으로 기념한다.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교인들이 초기 구성원들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렬한 바람과 강단 있는 추진력을 그들의 원류로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련교회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이란 막연한 저편의 세계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새로운 세상은 그들이 소산을 내고 삶을 영위해나가는 터전인 바로 이 국가, 이 지역에서 실현해 나가야하는 것이었다.

동련교회사를 보면, 삶의 탈출구를 찾던 이 고장의 민중들은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복음이 그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구원과 해방의 경험이 되었다. 특히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하는 복음만큼이나 의료와 교육활동 등을 통해 병든 자들을 치료해줬고, 눈을 떴으나 까막눈인 문맹자들에게 교육을 통해 이들의 갈망을 채워주며 호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이들 민중들이 받는 복음은 추상적인 것이 결코 아니었다.

초창기 동련교회가 마주했던 현실은 동학농민항쟁 이후에도 영세 농민들의 수난은 여전히 지속됐다. 게다가 일본의 한반도를 차지하려는 야욕이 노골화되는 등 실로 민족적 고난의 시기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민중이면서 동련교회 사람들이었던 이들이 꿈꾸는 새로운 세상은 더디게나마 바로 이곳 현실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었다.

개신교 신앙에 희망을 건 동련교회 초기 구성원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행하고자 부단히 애썼고, 실제적인 삶의 방식을 완전히 새롭게 바꿨다. 특히 창립자 백낙규는 복음을 믿고 개과천선했다. 한때 울분과 혈기를 어쩌지 못하고 술과 노름질로 자신을 학대했던 그는 신앙을 받아들인 그 즉시 술과 노름을 끊고 성서에 적혀있는 대로 새 생활을 실천하기 시작했다.

헐벗은 자들에겐 거저로 옷감을 나누어 주고 끼니가 없는 빈궁한 살림에는 당장 먹을 쌀이라도 슬며시 내다 주었다. 6, 7월부터 시작된 여름 더위와 이 때를 맞추어 도는 전염병에 걸려 죽어 길거리에 나뒹구는 시체들을 손수 들어다 염을 하고 장례를 치루어 주는 등 백낙규는 그야말로  사랑의 삶을 실천했다. 그래서 장이 서서 사람들끼리 모이면 “예수를 믿으려면 저기 동련의 백낙규 처럼 믿으라”는 소문이 날 정도였다.


지역사회와 동고동락하다


나라의 외교권을 상실하고 일본의 내정간섭이 시작 된 을사(1905)늑약 이후 국권회복은 민족적 과업이 되었고, 주권을 되찾기 위해 교육을 통한 실력을 배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었다. 이처럼 ‘교육구국’을 위한 운동이 막 불붙던 때에, 동련교회 사람들은 ‘해 뜨는 광명의 동녘을 밝히는 민족 계몽의 장’이라는 의미를 담은 계동(啓東)학교를 설립했다.  

백종근은 그의 증조부 백낙규가 교회 창립에 이어 계동학교의 설립에 힘쓴 까닭을 당대에 일어났던 교육구국운동에서 찾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이라는 종교적인 언어로 설명한다. 계동학교 선생님들도 “배움만이 힘을 기르고, 나라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었으며, 성경말씀과 신앙교육을 중요시하였기 때문에 여러 과목 들 중에서 국어를 특히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수탈과 간섭에 꿋꿋이 맞서던 동련교회는 일방적인 지시에 의해 해방을 앞두고 강제해산 되는 환란을 겪기도 했다. 오늘날 동련교회 사람들은 교회가 “민족교육에 힘써 왔기 때문”에 박해의 상징으로 해산을 당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민족운동의 산실이던 계동학교에 일본 국기를 걸기 위해 마련되었던 게양대를 교회 뜰에 세워두고 암울했던 시기를 끝내 살아낸 꿈꾸는 이들의 발자취와 정신을 지금껏 기억하고 있다.

굴곡 많은 시기를 넘어온 동련교회는 그들이 발 딛고 선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을 여전히 꿈꾸고 있다. 동련교회 김일원 목사는 2014년 자신의 글에서 “교회는 처음 세상으로 회복과 자유라는 희년 정신, 죄로부터의 해방과 구원인 예수님의 정신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먼저 회복과 자유를 누리고 그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이 기쁨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가 먼저 기쁨을 맛보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기쁨을 또한 온 누리에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교회의 모습을 초대교회에서 원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처럼 구원의 감격으로 예배드림으로써 구원의 기쁨을 누립시다. 성도의 교제가 충만하여 사귐과 기쁨을 누립시다. 봉사와 섬김의 일을 많이 함으로써 기쁨을 누립시다”라고 백낙규의 뜻을 계승하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을 제시했다.

김일원 목사는 특히 “우리 지역사회가 떠나가는 농촌이 아니라 찾아오는 농촌이 되길 바라고 저도 그런 차원에서 목회를 하고 있다”며 동련교회의 방향성을 천명하기도 했다.

동련교회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을 위한 활동에 개방하여 사용하기 위해 마련한 계동관(啓東館)에서 탁아소, 독서실, 노인학교 등을 운영하며 지역사회에 참여해 왔다. 현실에 발 딛고 더 나은, 나아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여정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중이다.

동련교회는 지역 농민들의 자립과 자활, 주민들의 생활지원과 삶의 질 개선 등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해오고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는 낮은 이율로 이용할 수 있는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고, 조합 운영에 어려움이 되었던 자본금 순환 문제를 보완해 쌀을 활용한 양곡조합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동련교회는 계동학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지역 학생들을 위한 장학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를 위해 1971년에 조직된 장학위원회는 지금까지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도 지역 사회 개발을 위해 전기를 들여오고 도로를 포장하는 일을 주도 했으며, 집중 호우 등 재난 상황에서는 농가 피해보상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고령화 시대를 마주한 동련교회는 노인복지활동에 주력하면서 교회 예산의 15%를 기꺼이 노인복지 활동에 들이고 있다. 다양한 노인복지활동을 통해 동련교회가 돌보고 있는 지역 사회의 노인들을 800여명에 이른다.

지금도 동련교회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며, 그 세상을 바로 이곳에서 이루어가고자 애쓰고 있다. 교회 어귀 입석에 새겨진 글귀 ’애수꾼의 뚝심’처럼 동련교회 사람들은 신앙을 동력삼아 새로운 세상을 굳세고 끈질기게 바라고 있다.

김일원 목사는 “우리 교회는 장학위원회를 설치해서 공부하고 싶지만 못하는 청소년들을 지원하고 있다. 장학금을 조성하는데 교회 다니지 않는 분들도 많이 참여한다. 이처럼 교회에 안 나오는 주민들도 동련교회를 ‘우리 교회다’라고 표현들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 특징적인 점이다”

한편, 백낙규 장로가 심은 신앙의 흔적을 추적해 ‘하나님 나라에서 개벽을 보다-토박이 예수꾼 백낙규 장로의 영성과 신앙’을 쓴 백종근(68, 미국 비버튼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은 이 추적기를 쓴 이유에 대해 “살아간다는 것은 자취를 남기는 일이다. 그 자취를 후대에 소개하고 싶었다. 역사적 사실을 사건의 흐름만으로 보면 드러나지 않는 유기적 관계를 놓칠 때가 많다”면서 “역사를 경작해 온 주체들의 삶을 바로 인식할 때 고리처럼 연결된 역사의 진실을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 증조부의 삶을 연구했다””라고 설명한다.

공인배 기자


22-11-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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