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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최종편집일 2023-01-30 12: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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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적, 예술적, 기술사적 가치 탁월
▲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 '국보' 지정 예고




백제 역사와 동시대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 계기
동아시아에서 위상과 상호 영향 관계 밝히는 이정표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백제 7세기 전반의 불교 미술, 왕실 공예, 금속공예 등에서 기준이 되는 유물이다. 특히 주조와 단조, 녹로성형, 도금, 조금기법 등 백제 금속공예 제작기술의 역량을 응집하여, 탁월한 예술품으로 완성한 점에서 한국공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한 7세기 동아시아에서의 위상과 상호 영향 관계를 밝히는 데에도 의미 있는 출토품이다. 따라서 익산 미륵사지 서 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국보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관리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문화재심의위원회의 '사리장엄구'를 국보로 지정하기로 결정한 주요 평가 내용이다.
문화재심의위는 특히, 사리장엄구 중에서도 가장 주목되는 유물로 '금제사리봉영기'를 꼽았는데, '좌평 사택적덕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시주해 사찰을 창건하고 기해년(639년)에 사리를 봉안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 총 193자가 새겨진 '금제사리봉영기'는 그동안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진 미륵사 창건설화에서 구체적으로 나아가 조성연대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밝힌 계기가 된다.
소통신문은 국가의 보물이 된 '사리장엄구'의 가치와 의미를 재조명해 감상의 기초를 제공하고 익산의 브랜드 가치가 한층 격상되는데 일조 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문화재청은 지난 달 31일 미륵사지 서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에 대한 국보 지정을 예고했다. 4년 전 보물로 지정된 '사리장엄구'의 국보 승격 여부를 평가한 문화재심의위원회가 그 독보적 가치를 인정한 결정이다.

국보 지정이 예고된 '사리장엄구'는 금동사리외호 1점을 비롯한 금제 사리내호 1점, 금제 사리봉영기 1점, 각종 구슬과 공양품을 담았던 청동합 6점 등으로 이루어졌다.

문화재심의위에 따르면 익산 미륵사지 서탑 출토 사리장엄구는 639년(무왕 40)에 봉안되어 제작 시기의 하한연대를 증언하며, 금제사리내호와 금동제사리외호, 청동합은 상당한 수준의 공력으로 제작된 금속공예품이다.

특히 금동사리외호 및 금제사리내호는 모두 몸체의 허리 부분을 돌려 여는 구조로, 동아시아 사리기 중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인 구조다. 전체적으로 선의 흐름이 유려하고 양감과 문양의 생동감이 뛰어나 형태의 안정성과 함께 세련된 멋이 한껏 드러나 있다. 

또한 사리내‧외호에 새겨진 연판문, 삼엽문, 당초문, 연주문, 연주환문 등의 다양한 문양은 선조, 모 조, 축조, 어자문기법으로 문양을 이루는 선의 흐름은 주저함 없이 유려하고 역동적이다. 이러한 예술적 성취는 조금기법의 특성에 맞게 제작 도구를 선택하고 장인의 우수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만 가능하다.

문화재심의위는 여러 종류의 문양을 선별하고 배치하는 방식에도 주목했다. 내호 와 외호는 모두 상하로 열리는 구조로 만들었으며, 이에 따라 문양도 배치되었다. 몸체를 문양 띠로 둘러 상하로 구획했고 여러 단으로 나누어 다채롭게 변주된 문양을 장식했다. 기물의 구조를 고려한 문양 배치로 같은 시대 다른 유물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는 특징이다.

또 청동합 6점은 녹로로 성형한 동기의 제작 수준을 알려주며, 우리나라 유기의 역사에서 중요한 선례로 자리할 것이라는 평가다.


미륵사 창건 연대 해명

그동안 미륵사의 창건연대는 무왕이 왕위에 오른 600년에서 그가 세상을 뜬 641년 어간으로 추정되었지만, 사리봉영기에 따라 639년으로 특정되었고, 이에 따라 미륵사지에서 출토 된 유구와 유물은 사비기 백제에 관한 연구에서 표준자료가 되었고, 이후 관련 연구의 정밀도를 크게 높이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미륵사지 발굴 기록에 따르면, 이 절터의 규모는 동양 최대이고, 1 탑 1금당으로 구성된 원(院) 3개가 병렬된 독특한 삼원식 가람이다.

미륵사 창건 발원자 해명

학계에서는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백제 무왕의 왕후로 추정해왔다. 그런데 사리봉영기에는 무왕의 왕비를 사비기 유력가문 출신 사택왕후로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백제의 국가적 사찰인 미륵사 창건의 배경과 계기에 대한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백제 사리봉안 방식 이해의 결정적 단서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침류왕 원년인 384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백제의 절터로 특정할 수 있는 사례가 많지 않고 미륵사지처럼 기년 명 자료가 출토되어 사찰의 창건 연대를 알 수 있는 자료는 매우 드물다.

지금까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사찰의 창건 연대가 밝혀진 사례로는 567년 창 건된 부여 ‘능사(절 이름은 불명)’, 577년 창건된 부여 ‘왕흥사’, 639년 창건된 익산 ‘미륵사’에 불과하다.

2009년 출토 된 미륵사지 서탑의 사리장엄구는 앞서 출토된 2007년 왕흥사지 목탑의 사리장엄구와 공통점 및 차이 점을 갖추고 있어 백제 사리봉안방식의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데 결정적 단서가 됐는데, 이것으로도 국보지정의 가치가 충분하다는 평가다.

공통점은 심초석의 일부를 방형으로 파낸 다음 그 속에 재질차가 있는 사리기를 중첩하여 봉안하였다는 점이다. 차이점 가운데 첫째는 사리기의 재질 및 형태다. 미륵사 서탑의 경우 안쪽에서부터 유리(병), 금(호), 금동 (호) 순인데 비하여 왕흥사 목탑은 금(병), 은(호), 청동(합) 순이다. 둘째는 사리 와 공양품의 출토 위치다. 미륵사지 서탑의 경우 사리기와 공양품이 사리공에 함께 봉안되었음에 비해 왕흥사지 목탑은 사리공에 사리기만 봉안되고 공양품은 심초석 주변에서 흩어진 채 발견되었다.

또한 사리장엄구는 봉안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된 상태에서 수습되어 백제의 불사리신앙과 사리장엄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특히 봉안된 시점이 639년이라는 사실은 목탑을 번안한 한국 석탑의 출현 시기를 비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한국탑파사 연구에도 중요한 기준점을 제시한다.

금동제사리호의 경우 몸체를 분리하여 제작하고, 연결부위에 ‘ᄂ’자형의 홈을 파서 상부 동체에 고정된 못에 걸어 결합하는 구조인데, 고대 금속공예의 의장으로는 초유의 사례다. 또한 사리기의 형태와 제작 방식, 시문된 문양 등을 통해 백제 금속 공예의 수준 높은 예술성을 엿볼 수 있으며, 사리기의 기형과 문양, 사리공양품 등을 통해 백제 미술의 대외 영향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문화재심의위는 이 같은 사실을 전제로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제작시기가 확실한 백제 왕실발원 사리장엄구로서 학술적, 예술적, 기술사적 가치가 탁월하여 국보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고 결정 소견을 밝혔다.

이번 국보 탄생 예고로 익산은 미륵사지와 왕궁리 오층석탑 등 네개의 국보를 보유한 도시가 되었다.

익산시 시 관계자는“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이어 4개의 국보급 유물을 보유하게 되면서 익산이 국내 대표 역사문화도시임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다”며“다양한 활용 방안 마련으로 백제 역사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역사문화 관광도시로서의 위상과 가치를 더욱 높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공인배 기자


22-11-0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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