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지역 1순위 서민들만 사는 판자촌 인식을 덮고 골목을 지켜 온 제법 잘 사는 동네

기찻길옆에 산다고 말을 하면 어떤생각이 먼저 들게될까?

한적한 시골마을을 달리는 검정 증기기관차가 내품는 연기와 우렁찬 경적이 울려 퍼지고, 먼발치에서 논일을 하던 농부가 굳어진 허리를 펴고 잠시 땀을 닦는 모습 등 감성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고, 열차가 지날 때 마다 흔들리는 판자 집에서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극 서민층을 생각하는 현실적인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렵고 힘든 형편의 판자촌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기찻길 옆을 떠올리면 판자집 서민들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기차로 인한 소음공해가 심해 거주지로서는 기피지역 1순위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제적 유가 없는 서민들이 사는 지역으로 낙인찍혀 있기 때문이다.
철도관사골목은 그런 판자촌과는 거리가 먼 골목이다.

익산역을 중심으로 철도공무원들이 대부분 살았다는 이곳은, 오래되긴 했지만 지어질 당시를 생각하면 다른 곳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주택들이 들어서 있다.

아직까지 일본식으로 지어진 주택들도 고스란히 남아있는데, 대부분 자녀들을 독립시키고 홀로 지금까지 살아온 집을 지키고 있는 어르신들과, 언젠가 재개발이 될 것이라 믿고 보수나 새로 건축을 하지 않은 주민들도 있어 허름해 보이는 집이 많을 뿐이었다.

개중 어떤 이들은 집만 남겨둔 채 아파트나 타 지역으로 떠나 폐가가 되어가고 있는 집들도 과 이미 헐린 공터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기차가 달릴 때 소음은 약 100dB 가량 발생한다. 때문에, 소음을 참지못하고 떠나간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익산을 지나는 열차는 하루에 110대(주말 132대)로 평일은 10분에 1대꼴로 지나가고 있다. 이중 KTX가 50%에 육박하고 있고 그 뒤를 무궁화호와 새마을호가 뒤따르고 있다.

다행히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KTX열차는 전기로 운행되기 때문에 다른 열차에 비해 소음이 적다. 그래도 기차특성상 소음은 언제나 함께 한다. 

층간소음 때문에 윗집 사람들과 싸우는 사람도 종종 목격하고, 뉴스나 기사에서는 소음으로 인해 살인사건까지 벌어진다고 하니 소음이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 지 잘 알 수 있는 증거다.

‘갓난아기를 키우는 집에 방문할때는 초인종을 누르지 않는 것이 예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힘들게 재운 아기가 갑작스런 초인종 소리에 놀라 잠을 깨고 울음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어서 나온 말이다.

최근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리오넬 메시’가 옆집소음에 아이가 수면을 방해받을까봐 옆집을 구입하기도 했다.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들어보면 가사가 흥미로운데,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칙폭 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 잔다’는 가사처럼 아기들이 기차소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들어오던 기차소리라 태어나서도 크게 거슬리지 않게 되는 모양이다.
반복적인 자극을 학습해 비로소 익숙해져버린 인간의 적응력이 아닐까?

이 골목에 사는 한 할머님은 이렇게 말한다. “여서 살아도 시방 기차소리 들리지도 안혀요, 잘라고 누웠는디 그때는 들리고 그려요”

그나마 잘 때 들리는 열차소리도 이제는 자장가로 들린다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조차도 열차소리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철도관사골목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모여있을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그곳에서 적응해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떠나는 사람들은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들이 없기에 골목에는 70~80년대에서 시간이 멈춰있었고,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어린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골목 여기저기에서 보이는 80년대 느낌의 간판, 표지판들, 녹슬고 삭아 제 기능을 잃어버린 방범창, 지날대로 지나버린 유행의 타일 등 오래전 동네의 모습이 마냥 정겨워 보이기만 했다.

바랄 것 없이 잠잠하기만 한 주민들이지만, 누군가는 이런 소음에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또 이 동네를 이루고 있는 7~80대에 이르는 다수의 노인들을 위해, 주민들이 목청높혀 요구하지 않아도 소음제거에 힘을 써야하는 것은 물론이고,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혀 줄 계획을 세워야 한다.

◈ 한백민 미용실

임금숙(54)씨는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상가를 하고 있다.

전에는 여인숙, 슈퍼마켓도 몇 개 들어서 있었지만, 슈퍼마켓은 주위의 편의점 마켓에 밀려 문을 닫은지 오래고, 달랑 한백민 미용실만이 상가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997년부터 이곳에서 운영해온 임씨는 미용실의 번성기를 귀띔해주며 자랑스러워 했다.

이런 골목에서 미용실이 장사가 된다는 말인가? 해답은 바로 인근 학교에 있었다.

제일고등학교가 당시는 이리상업고등학고였으며, 상고특성상 학교가 일찍 파해 학생들이 단체로 왔다고 한다.

당시는 2명의 직원을 두고 10명 넘게 기다리는 학생들과 주민들의 머리를 손질했다고 하니 이런 골목에서는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학교가 인문계로 바뀌고, 자율학습 등 하교시간이 늦춰지자, 자연스레 학생손님들은 떨어졌고, 이제는 단골손님과 동네주민들 위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임씨는 미용기술로 봉사활동도 펼치고 있다. 아들이 자폐성장애1급을 앓고 있어 장애인부모회 익산지부장도 역임하며 자신이 가진 미용기술을 장애인들에게 베풀고 있었다.

“요즘은 직접 미용실을 오지 못하는 장애인들이나 지인들이 전화가 와요. 그럼 가서 머리 해주고 오고 그러죠. 그렇게 가서 돈 받고 오겠어요? 그냥 베풀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베풀어야죠”라며 “나이도 들어가고,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 기술로라도 함께 나눠야죠”라고 말하는 임씨는 자신을 드러나지 않고 꾸준한 봉사를 실천하고 있었다.

임씨는 30년째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효부로 인정받아 2012년 아산사회복지재단에서 효행가족상을 수상하는 등 안팎에서 헌신해오며 살아온 천사중의 천사였다.
임씨는 바램이 있다며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민들이 대부분 노인인데, 그 흔한 경로당하나 없어 무료하고 적적해 하는 노인들이 많다고 한다.

또 큰길을 건너 평화동쪽까지 가는 노인들을 보자니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며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