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에서 백제까지 고대사연구 더 필요하다
일제 때 철도 부설과 함께 읍면 성쇠 엇갈려

본지는 지난 2012년 8월부터 12월까지 익산지역 각 읍면을 돌며 사라져가는 옛 기억들을 되살려 기록으로 보존하기 위한 작업을 펼쳤다.

올해는 금마면, 왕궁면, 춘포면, 여산면, 함열읍 등 5개 읍면의 수십 개 자연마을에 숨어 있는 이야기를 총 18회에 걸쳐 실었다.

구술사(口述史)는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를 우선 적어놓고 이를 선별해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있는 것들을 정식 기록을 통해 남기는 것인데, 이를 위해 100여개 마을을 돌며 주민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이미 들어서 아는 내용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숱하게 찾아내기도 했으며, 기존 기록이 틀린 것을 발견해 내기도 했다.

특히 주민들의 얘기를 듣고 그대로 기록만 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근원을 연구해 새로운 사실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동시에 펼쳤다.

금마, 왕궁, 여산면에서는 비교적 옛 이야기를, 춘포면, 함열읍에서는 근현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많이 채록할 수 있었다.

◇마한 백제에서 조선 때까지

구술사 정리작업을 시작했을 때 처음 방문한 곳은 고대 마한과 백제의 숨결이 살아 있는 금마면이었다.

작업의 첫 출발점인 신용리 구룡마을에서는 지명탐구를 통해 이곳에 구렁이가 많았고, 미륵산 자락에 아홉 개의 신비한 바위가 있어 구룡이라는 지명이 생겼다는 추정를 제시했다.

또 기준 왕이 항복한 ‘항복바위’, 준왕의 군사들이 붙잡혀 맞았다는 ‘맞은 바위’, 군사들이 징을 쳤다는 징골, 망을 봤다는 망골 등의 지명을 새롭게 발견했다.

두 번째로 방문한 금마면 황각동 마을에서는 지명에 관한 근원이 확실히 밝혀졌다고 본다.

익산향토지의 기록, 즉 중국의 문호 최호가 지은 '황학루'라는 시에서 이름을 따왔다는 기록은 잘못됐고, 중국 강남의 3대 누각 가운데 황학루와 등왕각을 합친 말이라는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제시했다.

또 황각마을 바위에 쓰여 있는 '하서대'라는 의미가 중국 당송팔대가의 시문에서 나왔다는 것도 밝혔다. 황각동 바위에서 소세양을 사랑한 처녀가 결혼이 무산되자 자결했다는 전설도 실었다.

금마면에 이어 왕궁면으로 넘어가 용화리 신탄마을에서는 왕궁에서 여산으로 넘어가는 탄현이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이 싸운 후 만들어진 지명이 아니라 그 이전 백제 때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왕궁면 궁평마을 구술사에서는 제석사 터가 이곳에 있는 것으로 보아 금마 왕궁 지역이 왕도였다는 점이 확실하며, 다만 제석사의 창건 주체가 무왕인지, 관세음응험기에 나오는 무광왕인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제기했다. 또 무광왕이 무왕인지, 백제 이전 마한시대의 무광왕인지도 학술연구가 더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백제시대를 기록한 정사에 익산 천도 기록이 없고, 제석신앙이 불교 이전에 형성된 것으로 보아 제석사를 무왕 때 세웠다고 확신할 수 없다는 주장도 실었다.

왕궁리 탑리마을 편에서는 미륵사 탑은 남매 중 누이가 쌓았고, 왕궁 탑은 남동생이 쌓았다는 전설을 찾아 기록했다. 또 이곳의 풍수가 개와 닮았다는 전설은 왕건과 견훤 사이의 군사적 대결구도에서 나온 비화일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했다.

다음으로, 미륵사 터가 있는 금마면 기양리 노상마을 상·하편에서 본지는 미륵사를 언제, 누가 세웠는지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임실 오수의견과 같이 주인을 구하고 대신 죽은 개의 비석을 찾아 소개했으며, 미륵사 스님들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주민들이 인근에 금고양이를 묻었다는 민담을 발굴하기도 했다. 

특히 삼국유사에 나오는 선화공주는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으며, 일연선사가 불교의 입장에서 꾸며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미륵 신앙은 미륵선화 사상과 관련돼 있으며, 미륵불을 자처한 궁예의 어머니가 선화부인이라는 설이 있고, 서동선화 설화는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의 일화와 비슷하다는 점도 소개했다.

본지는 금마에서 왕궁을 거쳐 8편에서부터는 춘포면을 방문해 구술사 정리를 이어갔다.
춘포면 창평리에서는 다시 마한 백제의 기준왕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은 원래 마한백제 기준 왕 때 창고를 두었던 자리였다. 조선 때 곡식창고인 ‘사창’이 있던 자리라는 주장도 있고, 백제 무왕 때의 창고라는 주장도 있지만, 기준 왕 세력의 한 부족이 정착한 마을이라는 마을 유래에서 볼 때 학술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산면에서는 먼저 원수리 학동마을을 방문했는데, 필봉의 정기를 받아 인재가 많이 난다는 것과 필봉의 다른 이름인 '쌍봉'의 영향을 받아 실제로 한 집안에 쌍둥이가 두 번 태어났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또 태조 왕건이 군대가 주둔했던 ‘문드러미재’에 관한 전설을 기록했다.

여산면 호산리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짚이나 풀로 덮어놓는 ‘초분’ 풍습을 채록했다.

천호산의 '호'자에 병 호자를 씀으로써 옛날부터 천호동굴이 있었음을 알고 있었고, 호월마을의 옛 이름인 '중말'이 '오방난장'으로 불린 이유를 설명했다.
또 호월마을 인근의 외사마을은 원래 '삭골'이라고 불렀으며, 춘향이와 변사또의 얘기와 비슷한 민담이 이곳에 전해오고 있다는 점을 소개했다.

13편에 소개된 여산면 두여리에서는 '굴 바위 모퉁이', '조개배미', '배다리' 같은 지명을 소개하고 이곳이 옛날에 바닷물이 들어왔고, 배가 다녔다는 점을 밝혔다.

또 '갑옷 터'라는 지명을 통해 이곳이 왕건과 견훤의 싸움터였다는 주민들이 말도 소개했다.
여산면 태성리에서는 이곳이 익산시 여산면과 완주군을 연결하는 길목이었고, 당시 두 지역을 연결한 '큰 재'와 '작은 재'를 직접 답사해 글을 실었다.

주막집이 있던 자리도 현지에서 확인했다.
또 여산 장을 오가는 완주군 사람들을 맞이하면서 번화했던 옛 풍경과 교통이 발달한 지금의 풍경을 비교하기도 했다.

◇근현대사에서 묻힐 뻔한 이야기

춘포면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대농장이 있었던 만큼 근현대와 관련된 얘기가 많았다.

춘포면은 철도가 놓이고 춘포역이 생기면서 성했다가 현대 들어 쇠한 지역이다.

이중 춘포리에서는 일제때 ‘대장촌’으로 불렸다가 철도가 놓인 뒤 ‘딸촌’으로 불린 이야기를 실었다.

그러면서 일제 때 겪은 국민들의 수난을 쌀 수탈과 공출이라는 얘기를 통해 적나라하게 전했다. 또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일본인 호소카와의 농장 소속 관리의 집은 ‘근대문화유산’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의 유산’으로 부르는 것이 더 합당하다는 주장도 실었다.

함열읍으로 넘어와서는 먼저 다송리를 찾았다.

함열 지역은 근현대사에 기록될 만한 것들이 많았다.

다송리에서는 이곳이 왜 다송리로 불렸는가를 밝혔고, 6.25 전쟁 때 벌어졌던 전투를 소개했다.

함열읍 석매리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수탈 흔적을 마을에 남아 있는 '하지끼'라는 지명을 통해 밝혔고, 이것이 공출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제시했다.

또 연료가 부족했던 시절 토탄을 캐 사용했고, 철도 부설과 관련된 일화와 조선말 천주교 박해 때 신자들이 피난해 세운 용왕마을의 내력도 소개했다.

흘산리에서는 석산개발로 없어진 흘산, 즉 돌산이 익산지역 남녀가 한데 모이는 광장이었고, 그곳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주민들의 일상사를 지면에 실었다.

또 일제강점기 때 조선의 산맥을 끊기 위해 산자락을 잘랐다는 것과 태풍이 불고난 뒤 해방이 됐다는 의미에서 '해방바람'이라는 말이 생겼다는 점도 아울러 기술했다.

마지막으로 함열읍 와리에서는 철도가 놓인 뒤 함열읍 발전이 시작됐으며, 와리의 뒷산인 동지산의 지명 유래에 대한 새로운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또 석산개발로 파헤쳐진 산야에 대한 주민들의 그리움을 묘사했고, 주요 절기마다 누렸던 전통 놀이의 풍요로움도 소개했다.

한편, 2013년부터 본지는 익산지역 15개 읍면 가운데 올해 소개된 5개읍면을 제외한 열 개 면 중에서 다시 5개 지역을 선정, 구술사 정리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