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성마을 장터가 함열역 주변으로 옮겨져.. '둥그레 방죽'은 전쟁 때 주민 학살지

함열읍, 즉 함열읍의 중심지인 현재의 와리瓦里는 일제강점기 때까지 작은 마을이 여기저기 분산돼 있는 곳이었다.

철도가 놓이고 함열역이 생기면서 사람이 모이고, 장이 서면서 점차 번화하기 시작했으며, 1975년에는 무려 17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았던 익산군의 중심이었다.

익산군의 인구는 ‘81년까지 이리시 인구보다 많았다. 그러다 95년 이리시와 통합되면서 급격히 쇠퇴한다. 영광의 역사는 60년 정도밖에 안 되는데,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급속히 쇠퇴한 지역이 드물다.

군청이 있었던 와리에는 마을 단위만 해도 무려 30개나 된다. 본지는 이 가운데 동지와 하시, 금성, 정동 마을을 둘러보고 함열읍 근 ·현대사의 단면을 짚어봤다. 

◇ 한적한 시골마을

지난 호에 지적했다시피 원래 일제 강점기 이전까지 함열읍이라는 지명이 없었고, 이곳은 조선시대 때 함열현청과 함열군청이 있었던 함라면 함열리의 부속 지역이었다. 함열군 옆에는 용안군(지금의 용안면)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이전까지 현재의 와리瓦里는 함열현, 함열군에 속했던 동사면東四面 지역이었다.

동사면에는 와리, 정동, 동지, 미력, 삼양리가 포함되어 있었고, 동사면 옆에 있었던 동삼면 두라리, 용안군 남면의 안대동 일부가 합쳐져 현재의 와리瓦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와리’라는 지명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기와를 굽던 마을이라 해서 ‘지왓말’, ‘지와 골’이었다. ‘지와’는 지붕에 얹는 기와다. 이를 한자로 쓰다 보니 ‘와리’가 됐다.

정동마을 임창호씨(72)는 “원래 인제 옛날 양반들 말씀을 들어보면은 함라면 함열리가 함열이어. 판소리 호남가에도 나와. 인심은 함열이고, 인심이 굉장히 좋았던 모양이라. ‘인심은 함열이요’ 허는 곳이 함열리여. 이 함열읍은 원래 와리라고 허는 디여. 기와를 굽기 때문에 와리라고 했답니다”고 말했다. 

지금은 함열읍에서 가장 번화하고 큰 곳이지만 당시에는 사람이 많이 살던 곳이 아니었으며, 낮은 산에는 소나무가 많고 전답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한적한 시골에 불과했다.

“옛날에는 함열역 쪽이 허허벌판이었다고 그러더라고요. 한두 가구씩만 있는.” 금성리 소재문씨(50)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함라에 있는 양반들이 철도 부설에 반대해 이쪽으로 선회한 것이었다.

금성리 소만섭씨(83). “그 때는 여그가 아주 촌이라, 시장이라고 5일마다 한 번 서는데, 사람도 별로 모이지도 않고. 촌에서 뭐 채소 같은 것이나 팔고, 많이 모이질 않았어요. 장은 섰지만.”
소씨는 이어 “그전에는요, 하늘만 빤했어요. 솔이 우거져가지고 저녁 때 되면 애기들은 바깥에 내놓지도 못허고. 그전에는 그 ‘고가담집’이라고 있잖아요, 고거 다섯 채 빼끼 없었소.”

해방 전까지만 해도 당시 양반이나 유지들은 함라면 함열리에 살고, 상민이나 상공인들은 이곳에 주로 살았던 모양이다.

철도는 그렇게 해서 지금이 함라면을 피해 함열로 왔다. 

소만섭씨는 “함라라고 허는 디가 부자가 많이 살잖아요. 인자, 유지급이지. 함라면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그리 철로가 못 나게 했어”라고 말했다.

“그 양반들이요, 시끄럽다고 철길을 못 오게 막았대요. 그래서 용안에서 함열로 해서 황등으로 (철길이) 빠졌다고 들었어요.” 소재문씨가 말을 이었다.

동지마을 문정식씨(62)는 “함라양반, 부자도 많이 살고 또 원님도 살아가지고 차가 지나가면 시끄럽다고 하니까, 원래 함열리가 거기여.”라고 말했다.

“원님이 살았디야, 함라에. 그래가지고 함라에서 시끄럽다고 철로를 그 쪽으로 안 내고 이쪽 함열로 냈대. 양반들이 살아, 함라가.” 같은 마을 최행복(75)씨의 말이다.

상시마을 최대규씨(63)는 “여기는 인제 기차역이 생기기 전에는 일개 부락이었어. 산 밑에 이렇게 서민들이 사는 부락. 함라쪽으로 갈라고 그랬는데, 양반들이 ‘기찻길 못 낸다’ 해서 함열로 해서 익산으로 낸 것이지.”

이렇게 해서 지금의 함열읍으로 철도가 났고, 1912년 함열역이 세워졌으며, 지역의 융성은 여기서 시작됐다.

◇철도와 함께 부흥

함열읍 와리는 북쪽에 나지막이 버티고 있는 동지산冬至山 아래 있었던 작은 마을이었다.

주민들은 아직도 왜 동지산인지 잘 모르는데, 익산향토지에 따르면 동지산이라는 이름은 ‘등진산’에서 나왔다고 한다.

 마을 뒤에 있는 산, 마을이 등지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매우 설득력 있는 말이지만, 함열읍은 옛 함라면 함열리의 동쪽에 있어 동사면東四面이었고, 주변 지명을 동삼면, 동이면 등으로 부른 것으로 볼 때 함라면 함열리의 동쪽에 있는 산, 또는 동쪽에 솟은 산 이란 의미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원래 東지산을 冬지산으로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지 연구가 필요하다.

“(함열에) 기차역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통학을 많이 했어요. 6.25 이후에는 이렇게 좋은 차가 아니었어요. 화물칸을 나무판자 조각으로 의자를 만들어 놔가지고 다녔어. 그 당시에는 기차가 늦게 오면 30분도 늦고, 1시간도 늦고 그랬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외지에 가기 위해서는 웅포, 성당, 용안, 삼기, 낭산면 이쪽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함열역으로 와야 하니까, 함열이 그래서 시장이 생겼겄지만, 더 커졌다 이말이어. 철길이 놓여가지고 기차역이 생기니까 이 와리라고 하는 함열이 급속도로 발전을 했지.” 정동마을 임창호씨의 말이다.

함열시장 주변인 상시, 하시마을 위에 있는 금성마을의 ‘말랑산’ 주변은 조선말 보부상이 거쳐 가는 자리였다. 장이 섰던 곳을 ‘걸망장터’라고 했다. 그런데 함열역이 생기면서 역 근처로 시장이 자연스레 옮겨졌다.

이 마을 소재문씨는 “제가 알기로는 오래전에 여기가 함열읍 장터였다고 그러는데, 함열역 쪽으로는 허허벌판이었다고 그러더라고요. 거기는 한 두가구나 있고 여기가 중심지였다고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걸망장터라는 말은 상인들이 등에 매고 다니는 걸망, 즉 등짐장수가 많이 왔던 장터를 뜻한다. 등짐장수 뿐 아니라 보따리를 이고 지고, 안고 다니는 ‘보상’과 지게나 걸망 같은 것을 어깨에 지고 다니는 ‘부상’이 같이 모였을 것이다. 그래서 보부상이다.

철도가 생긴 후 시장은 동지산 밑에 섰는데, 현재의 함열중학교 밑이 아랫장터, 그 위는 윗 장터라고 불렀다.

아랫장터에 상점이 많았고, 윗장터쪽에는 일본인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주민들은 함열역 근처인 함열시장으로 나가 서커스를 보기도 하고 영화 구경도 했다. 당시에는 약장사들이 서커스를 하면서 판촉을 했다.

“기차역전이 있다 보니까 인제 기차를 타러 이 근방 사람들이 다 모이는 거야. 여기서 4,5킬로, 8킬로 떨어진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대전을 가든, 서울을 가든, 전주를 갈라면 함열로 왔단 말이어. 그래서 번화가가 되기 시작했지.”라고 하시마을 최대규씨가 말했다.

“자유당 시대 때 함열에 병원이 세 개나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지. 그 때가 몇 년도냐 1948년대. 기차 타려고 주변 동네나 면에서 막 오니까...”

함열읍 흘산리를 중심으로 한 석산개발도 함열읍 소재지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석산이 개발되기 시작해가지고 함열에 큰 기여를 했지. 돌아가신 (현대차)정주영 회장님이 내가 죽기 전에 함열을 한 번 가보고 싶다, 헐 정도로 유명한 곳이 함열이었어. 왜냐, 경기기 좋으니까. 현대차에서 고급 세단이 나오면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함열 사람에게 들어갔어. 그래서 정주영 회장이 ‘함열이라는 동네가 어떤 동네간디 이렇게 고급차를 사 가냐.’ 그런 얘기도 있었어.”

그는 돌산의 바위 이름도 기억했다. “귀신바위가 있었는데, 그 돌을 손으로 때린다거나 깬다거나 하면 사람이 죽었어. 근디 석산개발을 혀서 다 없어져 버렸어.”

석산개발이 함열 경제에 활황을 가져다주었지만, 지금은 그로 인해 급속도로 쇠퇴하는 결과도 얻었다.

중국산 석재가 들어오자 침체됐으며, 개발 후 복구가 안 돼 산야가 몸살을 앓고 있다. 옛날의 풍요로움은 가고 폐허만 남은 것이다.

◇기억의 파편들

함열 철도 건널목 주변을 주민들은 ‘간지평’이라고 불렀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아이들이 여기서 놀았는데, 겨울에는 망을 쳐 놓고 오리를 잡기도 했다.

함라면에서 정동마을로 가는 길에는 ‘깐치고개’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을 넘어가면 ‘구렁목’이 나온다.

23번 국도인데, 구렁목은 구렁이 모가지 같이 긴 고개라는 뜻이다.

이 길로 함라면(함열현.함열군)에서 잡아들인 죄수들을 여산현으로 이송했다.

현재의 함열성당 뒤쪽에는 ‘둥그리 방죽’이 있었는데, 6.25전쟁 때 인민군들이 반동분자를 끌어다놓고 죽였다고 한다. 지금은 쓰레기매립장으로 변했다.

“말로는 (둥그레 방죽이) 한 백마지기(2만평)가 넘었다고 그랬거든요. 굉장히 컸어요. 주변만 돌더라도 한 시간 넘게 걸리고. 지금은 쓰레기를 매립해서 인자 흔적도 없어요.”
주민들은 일제 때도 도박을 즐겼다고 한다.

“그전에 도박을 많이 했어요. (금성마을 옆) 시제 모시는 묘가 있는데, 거기로 수십 명씩 와서 도박을 많이 했어요. 거의 매일 했어요. 그 묘똥이 좀 높거든요. 일본놈 순사들에게 누가 밀고하면 잡는 모양이드라고. 그러면 옆에가 벌판인게 도망갈 수 있잖아요.”

공출의 기억도 있다.

“일본놈 땅을 짓고, 인자 일본놈이 (지세를) 달란대로 주고 나머지를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니요. 근디 막 나락을 내놓으라고 하니 낼 수가 없지. 그러면 (순사들이) 가두고 두둘겨 패고, 그 엄동설한에 차디찬 감방에 가서 한 이십일씩 견디고. 매 맞고 나온 사람도 있어요.”

“함열 지소가 함열중학교 옆에 있었거든요. (공출을) 안 내면 짚 부근을 막 찔러봐요, 나락을 묻었나 안 묻었나. 묻은 것 들킨 사람도 있었지. 있으면은 구덩이 파가지고 싹 가져가고. 그 때는 농사지어도 제대로 먹덜 못했어. 다 뺏어강게.

동지마을은 정월 대보름에 성당면 아이들과 ‘쥐불 싸움’을 했다. 함열과 성당의 경계인 삼산다리(성당다리, 함열다리)로 성당면 아이들이 넘어오면 이쪽에서 쥐불을 쏘아대며 신나게 놀았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