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교육청이 지난달 27일 입법예고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 도민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민주주의 원칙과 인권을 중시하는 보편적 추세에 부응하는 것이라는 찬성의견과 학생의 인권은 신장되지만 교원의 권리는 축소돼 훈육기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반대의견으로 나뉜다.
특히 최근 발생한 일부 학부모·학생의 교원 폭행사건이 조례안 입법예고 시점과 교묘히 맞물리면서 관심이 고조된 상태다. 이에 본지는 조례안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봤다.
조례안 주요 내용
조례안은 총칙과 학생의 인권, 학생인권의 진흥, 학생인권침해에 대한 구제, 보칙 등 5장 51조, 부칙 2조로 짜여졌다.
1장 총칙에는 조례 제정 목적과 학생의 인권보장 원칙을 밝혔고, 학생인권을 실현하는 것을 교육감의 책무로 규정했다.
'학생의 인권'을 명시한 2장에서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 폭력과 위험으로부터의 자유, 교육에 관한 권리, 사생활의 비밀·자유 및 정보의 권리를 규정했다.
이어 양심 및 종교·표현의 자유, 자치와 참여의 권리, 복지에 관한 권리, 징계 등 절차에서의 권리, 권리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등 총 10절 24개 조항이다.
3장은 '학생인권의 진흥'에 관한 사항인데 인권교육, 인권실천계획을, 4장은 학생인권침해에 대한 구제기구 구성 및 절차를 규정했다. 5장은 보칙이다.
학생인권은 최소 권리
총칙에서는 조례가 학생의 인권을 학교 교육과정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특히 조례에서 말하는 학생인권은 학생이 존엄성을 유지하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다. 따라서 조례로 규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인권이 경시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 교육감은 정책을 수립할 때 학생인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고 학교 설립자 및 경영자, 교장과 교직원, 학생의 보호자는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인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차별·폭력 금지
조례가 학생인권 중에서 우선 강조하고 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이 차별받지 않으면서 폭력과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에게는 성적, 경제적 지위, 성별이나 종교, 출신국가, 피부색, 용모,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것.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는 따돌림(왕따)이나 집단 괴롭힘, 성폭력 등 모든 물리적·언어적 폭력을 당하지 않을 권리다. 따라서 직간접적 체벌은 금지되며(6조), 폭력이 발생할 경우 교육감과 교장은 적극적인 조치 또는 긴급구조 조치를 해야 한다. 교사의 권위가 추락한다며 논란이 이는 대목이다.
학습권 보장
조례는 학습권 보장도 규정했는데, 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학교가 교육과정을 자의적으로 운영하거나 교내외 행사에 참여토록 강제해 학생의 교육받을 권리(학습권)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또 정규 교과과정 외의 시간은 학생이 무엇을 할 것인지 자유롭게 결정토록 해야 한다. 야간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9조). 야간학습이나 보충수업을 금지하지는 않았지만 일선 학교 및 학부모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사생활 자유 보장, 정보유출 금지
조례는 개성을 실현한 권리(11조).를 명시했는데 우선 복장과 두발 등 용모를 규제 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길이 모양 색상을 학교가 강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 여학생은 교복을 선택할 때 치마를 입을지, 바지를 입을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 이 대목은 논란의 핵심 중 하나다. '머리를 기르고 염색하거나 복장이 불량해도 놔두라는 것이냐'는 항변이 나온다.
학생이 물건을 소지하는 데 간섭을 받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12조). 따라서 긴급한 경우가 아니면 학생의 동의를 받지 않고 소지품을 검사해서는 안 되고,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일괄적으로 검사하는 것은 금지된다. 교사가 학생의 일기를 몰래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휴대전화나 전자기기는 수업시간에 소지할 수 없도록 규제할 수 있고, 학칙에 의해 다른 규제방안을 둘 수도 있다. 폐쇄회로티브이(CCTV)는 학생의 의견을 들어 설치하고 설치된 장소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특히 정보의 권리를 명시한 점이 눈에 띈다. 학생과 보호자는 학생 본인에 대한 기록을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고, 부정확하거나 권리를 침해하는 기록은 삭제를 요청할 수 있다(14조). 게다가 학교의 예산이나 결산 자료 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데, 학교는 10일 이내에 공개해야 한다.
양심 종교 표현의 자유
학교는 학생에게 양심에 반하는 반성문이나 서약 등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특정 종교과목을 강제로 가르치거나 종교행사에 참여하도록 종용하는 것도 금지된다.
또 학생은 서명이나 설문조사를 통해 의견을 모을 수 있으며 집회를 열거나 참여할 수 있다(16조).
참여의 폭 넓어져
학교 운영에서 학생의 참여를 증진시킨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학생과 학생회는 학칙의 제정이나 개정에 참여할 수 있다. 학교는 민주적으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학생회의 의견제출권도 보장해야 한다(18조).
게다가 학생과 학생회는 교육청의 정책 결정과정에도 참여할 수 있다(19조). 교장과 교직원은 학생대표와의 면담을 통해 정기적으로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학생대표는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석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 특히 학교는 학생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관해서는 학생들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동아리나 학생회 등 자치기구를 만들어 활동할 수 있다. 이를 학교는 행정·재정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또 학교는 성적이 좋거나 모범적인 학생들만 자치기구에 참여토록 제한할 수 없다.
복지·환경권 보장
조례는 기존에 실시하고 있는 학생복지권도 명문화했다.
각종 사안에 대해 학교에서 상담 받을 권리, 어려운 학생들에 대해 교육감과 학교가 우선 배려할 의무, 복지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 수립 등을 명시했다. 특히 교육감과 교장은 보호자를 교육하고 참여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 운용해야 한다(20조). 문화교육과 공연, 전시 등의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도 마찬가지다. 급식권(23조)과 건강권(24조)도 분명히 했다.
학생은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고, 교육감과 교장은 급식업체나 재료 등의 정보를 공개하고 정기적으로 급식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무상급식을 실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또 치료받을 권리, 보건시설 이용권, 생리로 인한 결석의 공결 처리 등도 명문화했다.
절차에 의한 징계
학교가 학생들을 징계할 때는 이유를 사전에 통지하고 공정한 심의기구를 구성해 소명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이 경우 학생과 학부모는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고 재심을 요청할 수 있다.
권리침해로부터 보호
학생은 자신의 권리를 알 권리가 있고, 권리행사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이를 위해 학교는 조례의 내용을 학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만약 인권 침해가 있다면 누구든지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상담과 조사를 청구할 수 있고, 인권에 관한 사항은 관계기관에 문서로 청원할 수 있다(27조).
소수학생 권리 보장
교육감과 교장은 빈곤한 학생과 각종 환경이 열악한 학생, 특기생, 장애자, 부적응자 등 '소수 학생'들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인권교육프로그램과 진로 및 취업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수학여행 등 각종 교육활동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 또 교육감은 대안학교나 평생교육기관에, 학교에 다니지 않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해 지원할 수 있다.
인권교육 확대
조례는 인권교육을 종전보다 확대하도록 했다. 교장은 학기당 2시간 이상 인권교육을 해야 하고 특성화고등학교는 노동권도 함께 교육해야 한다. 교직원에게는 연 2회 이상 연수를, 보호자(학부모 등)에게는 연 2회 이상 교육 또는 간담회를 실시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교육감은 학생인권교원을 설치, 운영할 수 있도록 했다.
실태조사·학생인권심의위 운영
교육감은 매년 도내 학생인권실태를 조사해 공표하고 교육에 반영해야 한다(35조). 통계자료를 만들 때도 조사내용을 포함시킨다. 또 인권 실현에 필요한 교육활동과 시설을 갖추기 위해 3년 단위로 실천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도교육청의 정책수립과 평가를 위해 15인 이내의 각계 전문가, 학생, 일반도민, 공무원 등으로 구성되는 '전라북도학생인권심의위원회'를 두도록 했다(38조). 다만 전문가들은 비영리민간단체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일반도민은 공개모집한다. 인권심의위는 학생인권실천계획 수립, 제도개선, 학생인권옹호관이 제안한 사항 등에 대해 심의할 권한이 있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이 학생들로만 구성된 '전라북도학생참여위원회'를 설치토록 의무화한 것이다(39조).
학생위원회는 50명 이내로 구성되는데 위원은 공개 모집하고 10명 이내의 위원을 교육감이 위촉토록 했다.
학생위원회는 전라북도학생인권조례 개정, 인권실태조사, 인권실천계획, 기타 학생인권 실현 및 참여를 위해 필요한 사항에 대해 교육감과 학생인권옹호관에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학생위원회를 각 시군 교육청별로 둘 수 있다.
학교의 학생인권 증진을 위해 교육감은 2년마다 학교별로 인권 실현상황을 조사해 조치를 취해야 하고, 관련 시민단체를 지원할 수 있다. 또 학교뿐 아니라 학원에도 학생인권이 보장되는지 관리감독 할 수 있다.
학생인권옹호관 설치
입법예고안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학생인권 침해가 발생하면 상담과 구제를 담당하는 '학생인권옹호관'을 도교육청에 두도록 했다는 것이다(43조).
학생인권홍호관은 인권심의위의 동의를 얻어 교육감이 임명하는데, 상임직 3명 이내로 하고 교육감이 정하는 지역에서 활동한다. 임기는 3년이다. 교육청이나 특정기업 및 단체와 관련 없는 사람 중에서 도교육감이 임명하지만 직무는 독립적으로 수행토록 했다.
인권옹호관은 인권침해 상담, 인권침해 조사, 인권침해 시정 조치 및 제도개선 요구 등의 권한이 있다. 학생인권옹호관의 활동을 위해 도교육청은 사무국을 두고 업무를 보좌할 공무원과 전문 조사원을 두도록 했다. 학생은 인권을 침해당했거나 그럴 위험이 있으면 누구나 인권옹호관에게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논란이 되는 것들
도교육청은 학생인권조례안과 교원의 권한 및 권리에 관한 조례안을 동시에 입법예고했다.
교원의 권리에 관한 조례는 교원이 수업을 방해 당했을 경우 법령의 범위 내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했고, 행정기관이나 교장, 학부모와 사회로부터 부당한 간섭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사상과 양심·종교의 자유,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나 적절한 휴식을 취할 권리를 명시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도교육청이 교원의 권리는 적게, 학생의 권리는 많이 챙겼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교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교원에 관한 권리는 기존 법령으로 충분히 보호할 수 있고, 일부 학부모들의 교원 경시 풍조는 조례를 통해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또 학생들의 일탈행위는 학칙을 통해 엄격히 다스릴 필요가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두발이나 복장 자유화, 간접적인 체벌 금지다.
그러나 두발이나 복장은 학교별로 학칙을 통해 규제할 수 있도록 열어 놨다(11조4항). 따라서 학교별로 자율적인 조정이 가능한 것들이다.
간접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 즉 간접체벌 금지는 논란의 핵심이다.
체벌 찬성측은 현재 상황에서 간접체벌까지 없앨 경우 일탈학생에 대한 훈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우려하고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선진적인 훈육방법을 고민해야지, 쉬운 방법으로만 통제하려 한다면 교육 선진화는 요원하다고 주장한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는 논평과 성명을 통해 "간접체벌은 훈육이라는 탈을 쓰고 손 쉽게 학생을 통제하려는 수단일 뿐"이라고 수차례 밝혔다.
한편으로는 학생을 지도하는 교원이 학생들 사이의 폭력은 엄격히 금지하는 반면, 교사가 학생을 간접적으로 폭행하는 행위(간접체벌)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온당한 것인지 반문한다.
중립적인 입장에서는 간접체벌의 종류와 강도를 한정해 놓고 선진적인 훈육방법이 정착될 때까지만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거론하고 있다. 또 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규칙을 어길 경우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학부모 K씨(52. 익산시 영등동)는 "간접체벌을 금지하는 대신 일탈행위을 할 경우 반대급부를 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거나 선진적인 훈육방법을 빨리 고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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