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오늘 저녁에 매 맞을 준비 되어 있냐? 너 오늘 조심해, 죽는다!"

"얘들아, ㅇㅇ이를 찐다 시키자 저녁에 다구리(집단구타)하자"

완주군에 있는 C수련원. 초등학생들이 극기훈련을 받기 위해 찾은 이곳이 공갈과 협박, 왕따와 집단폭력의 장소로 변질됐다.

집단 따돌림과 폭력을 주도한 몇몇 학생들이 피해학생의 신체를 접촉하며 욕설 등 언어폭력을 행사했고, 심지어는 뒤에서 돌을 던지기도 했다.<관련기사4면>  

실제로 지난 2일 익산시 부송동 b초등학교가 C수련원에 의뢰해 3~5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극기훈련장에서 발생했던 일이다.

학교 밖에서 교사의 눈을 피해 평소 싫어하던 또래 아이를 '왕따'시키고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된 것.

피해학생 A군(5학년)과 학부모에 따르면 이날 수련원에서 A군은 시종일관 괴롭힘을 당했다. 극기훈련 하루 전부터 왕따와 집단폭력을 계획한 학생들이 중심이 됐다.

가해학생들은 이날 오전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A군의 몸을 툭툭 치면서 "너 오늘 저녁(자유시간)에 다구리(집단구타) 당할 준비 돼 있냐? 조심해, 죽는다" 라고 말했다는 게 A군의 증언이다.

그러면서 "오늘 한판 뜨자(싸우자). ××놈아" 등의 욕설과 "싸우려면 지금 열 명쯤 준비하고 있으니까 같이 붙자"라는 협박성 발언도 이어졌다. 점심 식사 후에도 왕따와 폭력은 계속됐다.

몇몇 학생들은 뒤를 따라다니며 돌을 던지기도 했는데, A군의 머리와 어깨에 맞았다. 이들은 또 몸을 툭툭 치면서 "야, 찐따(왕따)××야"라고 놀려댔고 심지어 A군과 친한 학생에게 다가가 "너 A와 놀다 걸리면 죽어, 쟤 찐따야"라며 집단으로 따돌렸다.

견디다 못한 A군은 교관에게 이런 사실을 알렸고, 사태가 심각하다고 생각한 교관은 담임에게 데려가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때마침 자모회 소속 어머니들과 함께 먹을거리를 장만, 극기훈련장을 방문해 담임교사와 얘기를 하고 있던 A군의 어머니와 마주쳤다. A군의 어머니는 담임과 상의한 후 곧바로 집으로 데려왔다. 저녁식사 이후 자유시간에 벌어질 집단구타 사건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A군이 최근 10주간 왕따로 인해 미술심리치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다.

피해학생 더 주눅들게 하는 실태조사

문제는 학교 측의 안일한 대응이었다. 극기훈련 하루 전날 집단폭력계획을 친구들로부터 전해들은 A군은 이 사실을 학부모에게 알렸고, 학부모는 전화를 통해 담임에게 특별히 관찰해줄 것을 당부했지만 왕따 및 집단폭력 사건을 막지는 못했다.

게다가 교장과 교감은 사전에 이런 사실을 통보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고, 학부모가 지난 3일 학교를 방문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실태조사에 나섰다.
실태조사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교감의 지시를 받은 담임이 A군 소속반 학생들을 소집한 후 "A군에 대해 아는 대로 써라"는 등 피해조사와는 관계없는 지시를 내렸고 어떤 학생은 "A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답변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와 관련, 학교 관계자는 "극기훈련장에서 벌어진 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피해학생에 대한 것도 아울러 조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A군의 학부모는 "피해조사를 하려면 먼저 가해학생들을 호출해 조사하는 것이 우선이 돼야 하는데도 전체 학생들을 모아 놓고 피해학생에게 뭐가 문제가 있는지 먼저 가리는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학교 측의 이런 행태는 2차 조사 때도 이어졌다.

7일 진행된 실태조사에서 학교 측 간부교원은 A군과 돌을 던진 것으로 지목된 가해학생을 따로 부른 자리에서 A군을 마주 앉혀놓고  "너 얘가 돌 던지는 것 봤어? 똑바로 말해"라고 윽박질렀다고 A군의 학부모는 전했다.

이에 대해 해당 교원은 "바른대로 말하라는 취지였지, 그렇게 윽박지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1,2차 실태조사 과정을 전해들은 한 학부모는 "왕따 시키고 폭력을 행사한 학생보다 학교 측의 사후 행태가 더욱 무섭다"며 "사건을 자꾸 축소하고 피해학생 개인의 문제로 귀결 지으려 하는 태도는 향후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가해학생에는 관대하고 피해학생에게는 그토록 잔인한 배경이 무엇인지 의심스럽다"며 "피해학생에게 해명과 증거를 요구하는 듯 한 학교 측의 조사행태는 아이를 두 번 죽이는 반인권적 행태"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발생 사건 적당히 처리한 것이 원인

학부모는 A군에 대한 집단 따돌림과 폭력 발생의 원인을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진행된 왕따 및 집단 폭력사건을 적절히 처리하지 않고 무사안일주의로 끝난 데서 찾고 있다.

지난해 b초등학교로 전학 온 A군에게는 왕따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소 싸움을 잘 한다고 알려진 몇몇 아이들이 같은해 4월부터 집단 따돌림을 하기 시작했다.

따돌림은 "재수없는 놈, 병신 같은 놈, 고추 떼어버려, 목소리도 듣기 싫고 얼굴도 보기 싫다, 학교 나오지 마, 한 판 붙을래?"등의 언어폭력과 함께 이뤄졌다.

또 A군과 친구들의 사이를 벌려놓는 방식으로 따돌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같은 해 10월 왕따를 주도하는 7~8명의 가해학생이  점심시간에 A군을 집단구타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학부모는 학교를 방문해 교감을 만나 가해학생 및 A군에 대한 적절한 조치와 재발방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학교측에서 취한 조치는 교감 특별훈화 2시간과 5학년 승급시 분반조치를 하는 것으로 끝났다.

우선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았고, 학교폭력 관련 법률에서 보장하고 있는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와 가해학생 및 가해학생 학부모에 대한 선도 및 징계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편 A군의 학부모는 익산교육청 및 도교육청에 진상조사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져 부송동 b초등학교의 왕따와 폭력 문제가 조속히 해결될지 학부모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김경선 기자